개요
생제르맹앙레 조약(프랑스어: Traité de Saint-Germain-en-Laye)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인 1919년 9월 10일, 승전 연합국과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사이에 체결된 평화 조약이다. 조약명은 서명 장소인 프랑스 생제르맹앙레성(Château de Saint-Germain-en-Laye)에서 유래하였다. 이 조약은 1920년 7월 16일에 발효되었다.
배경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전쟁 수행을 위해 독일 제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나, 1918년 전쟁이 패배로 기울면서 제국 내 각 민족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1918년 10월~11월에 걸쳐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이 독립을 선언하고, 오스트리아 황제 카를 1세는 1918년 11월 11일 행정 참여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독일계 오스트리아 지역에서는 민주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1919년 5월 총리 카를 레너가 이끄는 대표단이 생제르맹에 도착했을 때 협상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었고, 연합국의 최후통첩에 따라 레너는 9월 10일 조약에 서명했다.
주요 내용
생제르맹앙레 조약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새로운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영토 및 군사적 제한을 규정한 문서이다. 조약에는 국제연맹 규약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미국은 이를 비준하지 않았고 이후 별도로 1921년 미국-오스트리아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영토 관련 조항
연합국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평화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영토 변화가 확정되었다.
- 보헤미아 및 모라비아는 새로 창설된 체코슬로바키아에 귀속되었다.
- 옛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은 재건된 폴란드로 반환되었다.
- 부코비나는 루마니아로 넘어갔다.
- 남티롤(볼차노도, 트렌토도) 및 오스트리아 연안 지대는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
- 달마티아, 카르니올라, 저지 스티리아 등은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슬로벤인 왕국(후일 유고슬라비아)에 할양되었다.
- 남케른텐 지역의 귀속 여부는 주민투표로 결정될 예정이었다.
- 톈진 내 오스트리아 조계지는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 헝가리 서부의 일부 지역은 이후 부르겐란트주로 편성되어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
정치·군사 관련 조항
조약 제88조는 오스트리아가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했으며, 이는 국제연맹 이사회의 동의 없이 독일과 정치적·경제적 연합을 맺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에 따라 신공화국의 명칭인 '독일계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로 변경되었다.
군사적으로는 징병제가 폐지되고 오스트리아 연방군은 3만 명의 자원병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조약 제177조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다른 동맹국과 함께 전쟁 개시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으며, 전쟁 배상금 지급 조항이 포함되었으나 정확한 배상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다.
영향
생제르맹앙레 조약으로 오스트리아는 전전 영토의 상당 부분과 인구, 자원을 상실하였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경제적 혼란을 초래하였고, 특히 제국의 수도였던 빈은 제국이 해체된 후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은 이러한 조건을 가혹하다고 여겼으며, 이후 독일과의 정치적 통합인 안슐루스(Anschluss)에 대한 지지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평가된다.
관련 조약
동시기 파리 강화 회의의 일환으로 헝가리와는 트리아농 조약, 독일과는 베르사유 조약이 각각 체결되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부유럽의 국제 질서를 재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