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는 한국불교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죽기 전에 미리 공덕을 닦아 사후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례이다. '예수(預修)'는 '미리 닦는다'는 뜻으로, 죽은 이후의 공덕을 생전에 미리 준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재(預修齋)', '시왕생칠재(十王生七齋)', '생전시왕재(生前十王齋)' 등으로도 불린다.
기원과 역사
생전예수재는 중국 도교의 시왕신앙(十王信仰)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비롯되었다. 그 근거 경전으로는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1246년 해인사 간행, 국보 제206-10호)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에 시왕사(十王寺)가 건립되고 시왕도와 지장시왕도가 조성되는 등 시왕신앙이 성행하였으나, 고려시대에 생전예수재가 실제로 설행되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들어 16세기 중반, 승려 대우(大愚)가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를 편찬하면서 의례의 체계가 정립되었다. 명종대(재위 1545~1567)의 승려 허응 보우(1515~1565)가 청평사에서 생전예수재를 설행하고 〈예수시왕재소(預修十王齋䟽)〉를 남긴 기록이 현존하는 가장 이른 설행 사례로 꼽힌다. 초기에는 왕실이 주도하였으나 점차 일반 백성으로 확산되었고, 유교적 의례가 정착하면서 왕실에서는 폐지된 반면 민간 사찰에서 지속적으로 전승되었다.
신앙적 배경
생전예수재의 핵심 교리적 근거는 육도윤회설과 인과응보 사상이다. 이 의례는 사람이 태어날 때 명부(冥府)에서 '수생전(壽生錢)'이라는 생명의 빚을 빌려온다는 관념에 기초한다. 이 빚은 경전을 읽지 않은 빚(경전 빚)과 금전적인 빚(돈 빚)으로 구분되며, 생전에 이를 갚지 않으면 사후 명부시왕(冥府十王)의 심판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믿는다.
명부시왕이란 사람이 죽은 후 7일마다 한 번씩 일곱 번, 그리고 백일, 1년, 3년에 각각 한 번씩 총 열 번에 걸쳐 생전의 죄과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을 가리킨다. 이 시왕신앙은 중국 도교에서 비롯되었으나 불교의 지장신앙과 결합하여 한국불교에 정착하였다.
의례의 절차와 구성
생전예수재는 주로 윤달(3년에 한 번 돌아오는 달)에 설행되는 것이 전통이나, 현재는 윤년에 구애되지 않고 수시로 행해지기도 한다. 의례 기간은 사찰에 따라 하루, 21일(삼칠일), 또는 49일(칠칠재) 등 다양하다.
의례 공간은 '예수이주야십단배설지도(預修二晝夜十壇排設之圖)'에 따라 법당 안팎에 여러 단(壇)을 설치한다. 법당 안에는 삼신불단(법·보·화 삼신불), 지장단, 호법선신중단을 설치하고, 법당 밖에는 염도대제 이하 명부시왕단, 고사단, 추루단 등을 설치한다. 이 설단 체계는 밀교적 만다라의 성격을 지닌다.
의례의 주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조전점안(造錢點眼)으로 금은전을 만들어 시왕단에 바치고, 사자(使者)를 청해 공양을 올린다. 이어 상단과 중단의 성중을 차례로 모셔 공양하고, 하단 의례로 이어진다. 동참 재자들은 경전을 봉독하고, 법주가 금은전과 경전 헌납으로 생전의 빚을 갚았음을 고한다. 마지막으로 동참 재자의 이름, 주소, 갚아야 할 경전 수와 금액이 적힌 함합소(緘合疏)를 불태우는 소전(燒錢) 의식을 통해 빚을 갚았음을 증명한다. 함합소는 반은 태우고 반은 보관하여 사후 명부에서 영수증으로 사용한다고 전해진다.
현대적 전승과 문화재적 가치
생전예수재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소멸된 불교 전통으로, 한국에만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2019년 밀양 작약산 예수재(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45호)와 서울 봉은사 생전예수재(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2호)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십구재(49재), 천지명양수륙재와 함께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칠칠재(七七齋) 형식 천도의식으로 분류되며, 생자(生者)를 위한 의례라는 점에서 망자를 위한 사십구재, 고혼을 위한 수륙재와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