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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파트리시오 전투

샌파트리시오 전투(Battle of San Patricio)는 1836년 2월 27일 텍사스 혁명 기간 동안 멕시코 공화국 군대와 텍사스 반군 사이에 발생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텍사스 주(州) 샌파트리시오(San Patricio) 마을 일대에서 벌어졌으며, 멕시코군이 텍사스 걸프 연안을 탈환하기 위해 전개한 골리아드 작전(Goliad Campaign)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평가된다.

배경

1835년 말까지 멕시코군은 텍사스 지역에서 사실상 모두 축출되었다. 당시 텍사스 임시 정부는 멕시코의 주요 항구 도시 마타모로스(Matamoros)를 공격하기 위한 원정을 승인하였다. 자원군 지휘관 프랜시스 W. 존슨(Francis W. Johnson)과 제임스 그랜트(James Grant)는 이른바 마타모로스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병력을 이끌고 이동하였다. 그러나 임시 정부의 총사령관 샘 휴스턴(Sam Houston)이 원정에 반대하면서 상당수의 병력이 이탈하였고, 존슨과 그랜트 휘하에는 약 60~100명의 병력만이 남게 되었다.

1836년 2월, 존슨은 말 무리를 확보한 뒤 약 40여 명의 병력과 함께 샌파트리시오에 도착하였다. 그는 마을에서 약 6.4km 떨어진 곳에 있는 라 가르사(La Garza) 목장에 일부 병력을 배치하여 말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병력은 마을 내 여러 건물에 나누어 주둔시켰다.

전투 경과

한편 멕시코의 호세 데 우레아(José de Urrea) 장군은 1836년 2월 18일 마타모로스에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텍사스로 진입하였다. 우레아는 정탐망을 통해 존슨 부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으며, 존슨의 말 무리가 남긴 흔적을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우레아는 약 100명의 기병과 100명의 보병을 이끌고 추운 밤을 강행군하여 2월 27일 새벽 3시경 샌파트리시오에 도착하였다.

멕시코군은 마을 주민 가운데 중앙집권 지지자들에게 창문에 불을 켜 두면 피해를 입지 않을 것임을 알린 뒤, 텍사스 병사들이 주둔한 건물을 파악하여 기습 공격을 감행하였다. 라 가르사 목장에서는 잠들어 있던 텍사스 병사들을 상대로 사격이 이루어져 4명이 사망하고 8명이 포로로 잡혔다. 마을 내부에서도 텍사스 반군에 대한 공격이 약 15분간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존슨과 그의 부관 3명(대니얼 톨러, 러브, 밀러 하사)은 우연히 마을 광장에서 발생한 총격 소리를 듣고 뒤문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골리아드까지 걸어서 이동하여 우레아 군대의 접근을 패닌(Fannin)에게 알렸다.

결과

전투 결과 텍사스 반군은 11명이 즉사하고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21명이 포로로 잡혔다. 포로 중 대부분은 전투 후 수일 내에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다. 반면 멕시코군은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텍사스 측에서는 총 6명이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집계된다.

우레아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는 누에세스 강 건너편의 리판티틀란 요새(Fort Lipantitlán)에서 벌어졌다고 되어 있으나, 텍사스 측의 기록들은 전투가 마을 내부와 라 가르사 목장에서 일어났음을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이후 우레아는 골리아드로 진군하기 전에 증원군을 기다리면서 잔여 텍사스 병력을 추적하였다. 그랜트와 남은 병력은 3월 2일 아구아 둘세(Agua Dulce)에서 매복 공격을 받아 그랜트를 포함한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의의

샌파트리시오 전투는 텍사스 혁명에서 멕시코군이 텍사스 걸프 연안을 탈환하기 위해 전개한 골리아드 작전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텍사스 반군들은 이후 골리아드 학살(Goliad Massacre)로 이어지는 멕시코군의 무관용 정책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 전투는 텍사스 독립 전쟁의 전개 과정에서 멕시코군의 반격이 본격화되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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