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라 무어 그림케(Sarah Moore Grimké, 1792년 11월 26일 ~ 1873년 12월 23일)는 미국의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이다. 여동생 안젤리나 그림케 웰드와 함께 '그림케 자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어머니로 평가된다.
생애 및 배경
1792년 11월 26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부유한 플랜테이션 소유주이자 변호사, 판사였던 존 포슈로 그림케(John Faucheraud Grimké)와 메리 스미스의 14명의 자녀 중 여섯째이자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지적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규 고전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꿈도 좌절되었다. 아버지의 도서관에서 지리, 역사, 수학, 법학 서적을 독학으로 공부했으나 라틴어 학습은 허락되지 않았다.
12세 때부터 가족 소유의 노예들에게 주일학교 성경 수업을 가르쳤으며, 개인 노예 소녀 헤티(Hetty)에게 읽기와 쓰기를 비밀리에 가르쳤으나 발각되어 부모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다.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노예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1817년 장로교로 개종하였고, 1819년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동행했다가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곳에 머물렀다. 1821년 퀘이커(친우회)로 개종하였고, 1827년 여동생 안젤리나를 남부의 한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찰스턴으로 돌아갔다.
활동 및 업적
1830년대부터 여동생 안젤리나와 함께 노예제 폐지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여, 미국 반노예제 협회(American Anti-Slavery Society)의 연사로 활동했다. 이들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주 의회에서 공식 증언한 여성들이 되었다.
1836년, 《남부 주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서한》(An Epistle to the Clergy of the Southern States)을 출간하여 남부의 노예제를 성경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1837년부터 1838년에 걸쳐 《성의 평등과 여성의 조건에 관한 편지》(Letters on the Equality of the Sexes and the Condition of Woman)를 발표했다. 이 저작은 여성 평등을 위한 최초의 체계적인 공개 논증으로 평가되며, 여성의 종속이 성경적 창조 질서에 기반한다는 당대의 주장에 대해 아담과 이브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해석을 통해 반박했다.
그녀의 저술과 연설은 루시 스톤,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루크리셔 모트 등 이후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에게 중요한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말년 및 유산
1838년 여동생 안젤리나가 테오도어 드와이트 웰드와 결혼한 후, 새라는 공개 연설 활동을 중단했다. 남북전쟁 기간 동안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지지하는 글을 쓰고 강연했다.
1868년, 자신의 오빠가 사망한 노예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명의 혼혈 조카(아치볼드 그림케, 프랜시스 제임스 그림케, 존 그림케)가 있음을 알게 되어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교육비를 지원했다. 아치볼드와 프랜시스는 각각 하버드 로스쿨과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1873년 12월 23일, 매사추세츠주 하이드 파크에서 사망했다.
1998년, 그림케 자매는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National Women'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2019년 보스턴시는 네폰세트 강에 새로 건설된 다리를 '그림케 자매 다리'로 명명했다.
주요 저서
- 《남부 주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서한》(An Epistle to the Clergy of the Southern States, 1836)
- 《성의 평등과 여성의 조건에 관한 편지》(Letters on the Equality of the Sexes and the Condition of Woman,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