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넓은 의미로는 1919년부터 1932년까지 상하이를 본거지로 활동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를 지칭하기도 하며, 좁은 의미로는 1919년 9월 11일 여러 임시정부가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재편되기 이전까지의 초기 단체를 일컫는다.
수립 배경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이후, 국내외에서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는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상하이에서는 1919년 2월 말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현순 목사를 상하이로 파견하면서 독립임시사무소가 설치되었다.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 모여들었다.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었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였다. 다음 날인 4월 11일에는 대한민국임시헌장이 반포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헌장은 조소앙이 기초하였으며,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국가 수립 선언으로 평가된다.
통합 임시정부로의 재편
1919년 당시 상하이 외에도 국내의 한성정부,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등 여러 곳에서 임시정부 성격의 단체들이 수립되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이들을 통합하는 데 나섰으며, 1919년 9월 11일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및 한성정부의 법통을 수용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발족하였다. 이때 대통령에 이승만, 국무총리에 이동휘가 선출되었다.
상하이 시대의 활동
통합 이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까지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주요 활동으로는 파리강화회의 등에 대한 외교 활동, 연통제와 교통국을 통한 국내 행정 조직망 구축, 『독립신문』 발간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1920년대 후반 김구가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1932년 1월 이봉창 의거와 4월 윤봉길 의거를 일으켰다. 이 의거들로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으나, 일본의 추격을 피해 1932년 5월 상하이를 떠나 항저우 등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역사적 의의
상해 임시정부 및 이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 강점기 동안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망명정부로서, 민주공화제와 국민주권의 원칙을 담은 헌법 체계를 유지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 제헌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이 명시되었다. 현재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되어 있으며,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통해 관련 역사가 보존·전시되고 있다.
참고문헌: 위키백과 '상해 임시정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한민국임시정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