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喪輿)는 한국의 전통 장례 의식에서 망자의 시신이 담긴 관을 집에서부터 장지(葬地, 무덤)까지 옮기기 위해 사용하던 운구 도구이다. 한자 '喪'(상, 초상)과 '輿'(여, 가마)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상례에 쓰는 가마'를 의미한다.
상여는 여러 사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할 수 있도록 긴 막대(장강·횡강)를 결구하고, 그 위에 관을 안치하는 판(소방상)을 얹은 구조로 되어 있다. 본체 위에는 대개 한옥의 지붕 형태를 본떠 만든 장식(상장)을 올리고 화려한 단청과 종이꽃 등으로 꾸몄는데, 이 때문에 '꽃상여'라고도 불렸다. 관을 상여에 싣고 상여꾼들이 어깨에 메고 장지까지 운구하는 동안에는 '상엿소리'를 불러 발을 맞추고 고인을 애도하였다. 상여의 크기와 지역 관례에 따라 필요한 인원은 적게는 16명, 많게는 32명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상여의 구체적인 형태는 중국 송나라 학자 주희(朱熹)의 『가례(家禮)』에 수록된 '상여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사례편람(四禮便覽)』의 도판에서 '상여'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는 바퀴가 달린 수레 형식(거, 車)과 사람이 어깨에 메는 가마 형식(여, 轝)이 함께 사용되었으나, 세종 때 소헌왕후의 국상부터 바퀴 달린 유거(遊車)를 폐지하고 어깨에 메는 대여(大輿) 방식을 채택하면서 어깨에 메는 형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민간에서는 이후 소방상이 없는 소여(小輿)가 보편화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상여'로 불리는 형태이다.
상여는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고인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마지막 길을 정성껏 배웅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구조물로 평가된다. 상여를 운반하는 사람을 '상여꾼'이라 하였으며, 상여를 보관하는 곳은 '상엿집' 또는 '곳집'이라 하여 마을 공동 재산으로 관리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와 인구의 도시 이주로 상여 운구에 필요한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사용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현재는 대부분 장의차(영구차)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상여를 사용하는 사례가 남아 있으며, 상여와 상엿소리는 한국의 전통 장례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