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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등

상대등(上大等)은 신라의 중앙 관제에서 최고위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법흥왕 18년)에 처음 설치되어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약 400여 년간 존속하였으며, 《삼국사기》에는 모두 43명의 상대등 보임 기록이 전해진다.

상대등은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화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眞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주로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함께 교체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상대등의 지위는 시대에 따라 세 차례 변화를 겪었다. 중고기(中古期)에는 진골 중 가장 문벌이 좋은 자가 선임되어 국왕과 더불어 권력과 권위를 상호 보완하는 관계에 있었다. 647년(선덕여왕 16)에는 상대등이었던 비담(毗曇)이 여왕 교체를 주장하다 반란(비담의 난)을 일으킨 사건이 유명하다. 중대(中代)의 전제 왕권 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는 정치적 실권이 집사부(執事部)로 넘어가면서 상대등의 위상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하대(下代)에 들어 왕권이 약화되면서 상대등은 다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상대등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회의 장소로는 신라 사영지(四靈地)나 남당(南堂)이 있었고, 회의 방식은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의결되지 않는 화백 제도(和白制度)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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