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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둔자 전투

삼둔자 전투(三屯子戰鬪)는 1920년 6월 4일부터 6월 6일까지 만주 동간도 화룡현(和龍縣) 월신강(月新江) 변의 삼둔자(三屯子)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대한북로독군부(大韓軍北路督軍府) 소속 독립군 연합부대와 신민단(新民團) 예하 독립군이 일본군 남양수비대와 맞서 싸워 승리한 교전이다.

배경

1920년 5월 28일,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대한독립군(홍범도), 국민회군(안무), 군무도독부군(최진동)이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조직하고 화룡현 봉오동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당시 연합 독립군의 병력은 약 1,200여 명으로, 기관총 2문과 소총 약 900정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독립군 연합부대는 국내 진공을 목표로 작전을 수립하였고, 일본군의 동향을 살피던 중 선제 공격을 결정하였다.

전투 경과

1920년 6월 4일 새벽 5시, 화룡현 삼둔자를 출발한 30여 명 규모의 독립군 소부대(홍범도·최진동 부대 1개 소대 및 신민단 1개 소대)가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江陽洞)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헌병 순찰소대를 기습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이후 독립군은 두만강을 다시 건너 삼둔자로 귀환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군 남양수비대는 니히미 지로(新美二郞) 중위가 이끄는 1개 중대와 헌병경찰중대를 출동시켜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하였다. 6월 6일, 삼둔자에 도착한 일본군은 독립군을 발견하지 못하자 보복으로 인근 양민을 살육하였다. 이에 독립군 사령관 최진동은 부대를 삼둔자 서남쪽 범진령(范鎭嶺) 고지에 매복시킨 후 일부 병력으로 일본군을 유인하였다. 일본군이 매복 지점에 진입하자 독립군은 일제히 사격을 가해 일본군을 궤멸시키고 퇴각시켰다.

이후 일본군 제19사단장은 야스카와(安川) 소좌가 지휘하는 월강추격대대(1개 대대 규모)를 추가로 출동시켰으나, 독립군은 북편으로 퇴각하여 안산(安山) 촌락 후방 고지에서 추가 진지를 구축하며 대비하였다.

결과

이 전투에서 독립군은 일본군 약 120명을 사살하고 소총 160자루, 기관총 3문을 노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군 측에서는 2명이 전사하였고, 인근 주민 9명이 유탄에 희생되었다. 이 전투는 대한북로독군부 편성 이후 독립군이 거둔 첫 대규모 승리였으며, 직후 전개된 봉오동 전투(1920년 6월 7일)의 도화선이 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봉오동 전투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삼둔자 전투는 독립군이 국내 진공을 목적으로 일본군을 선제 공격한 사건이자, 동시에 일본군 육군이 최초로 중국 영토(만주)에 불법 진입하여 독립군과 교전한 사례로 평가된다.

주요 지휘관

  • 독립군: 홍범도, 최진동, 안무, 이흥수(신민단), 이화일(소대장)
  • 일본군: 니히미 지로(新美二郞) 중위, 야스카와(安川) 소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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