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금지령(殺生禁止令)은 생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령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문명권과 시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일본 에도 시대의 겐로쿠 살생금지령(元禄 生類憐みの令)이다.
겐로쿠 살생금지령(일본 에도 막부)
에도 막부 제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 재위 1680~1709)가 겐로쿠 연간(1688~1704)을 전후하여 발효한 여러 법령을 통칭하는 말이다. 특정한 단일 성문법이 아니라, 비슷한 성격의 여러 법령(오후레, お触れ)을 총칭한다. 일본어로는 '쇼루이아와레미노레이(生類憐みの令)'라고 하며, '살아있는 것들을 가엾게 여기라는 법령'이라는 의미이다.
이 법령은 어패류 및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체에 대한 살생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특히 쓰나요시가 병술년(丙戌年) 태생으로 개를 중시하여, 개에 대한 보호 조치가 두드러졌다. 1685년에는 쇼군이 지나갈 때 개와 고양이가 다녀도 괜찮다는 내용의 법령이 발표되었고, 1687년부터 본격적인 살생금지령이 선포되었다. 이후 법령은 점차 강화되어 135차례에 걸쳐 추가 발표되었으며, 닭, 생선 등 식용 동물의 판매까지 금지 대상에 포함되었다.
배경으로는 쓰나요시가 후계자를 얻지 못해 고민하던 중, 그의 어머니 게이쇼인(桂昌院)이 총애하던 승려 류코우(隆光)의 조언에 따라 살생을 금하면 덕을 쌓아 후사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쓰나요시의 유학적 문치주의(文治政治) 추구와 생명 존중 사상의 영향도 있었다.
이 법령으로 인해 에도에는 약 10만 마리의 유기견을 수용하는 대규모 보호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개를 먹이는 데 연간 금 9만 냥(막부 수입의 약 11%)이 소요되었다.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졌으나, 실제 처벌 건수는 24년간 69건으로 제한적이었다. 에도 이외의 지방에서는 엄중하게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709년 쓰나요시 사후, 제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의 보좌역이었던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에 의해 이 법령은 폐지되었다. 막부 관계자가 편찬한 법령집인 《도쿠가와 금령고》(徳川禁令考)에도 막부의 권위를 고려하여 이 법령은 수록되지 않았다.
한국사의 살생금지 관련 사례
한국사에서도 살생금지와 관련된 왕명이 존재한다. 신라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대에는 "금살생 하교(禁殺生 下敎)"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불교적 계율의 영향과 대당(對唐) 관계, 그리고 재이(災異) 극복을 위한 정치적 방편으로 해석된다. 백제 법왕(法王, 재위 599~600) 역시 불교를 숭상하여 백성들에게 그물과 사냥 도구를 불태우게 하고 살생을 금하는 명령을 내린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한다.
메이지 시대 이후의 용례
근대 일본에서는 광견병 방역 정책의 맥락에서 '살생금지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에도 시대 겐로쿠 살생금지령이 광견(狂犬)을 계류시키는 의무를 규정한 바 있으며,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공공위생과 문명화의 명분 아래 축견(畜犬) 관리와 야견(野犬) 박살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는 동물 보호보다 인간 보호를 우선시하는 근대적 방역 체제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