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살라와트 율라예프(Salawat Yulayev, 러시아어: Салават Юлаев, 바시키르어: Салауат Юлай-улы, 1754년 6월 ~ 1800년 10월 8일)는 18세기 러시아 제국 시기 바시키르족의 민족 영웅이자 시인·가수이다. 그는 1773년부터 1775년까지 이어진 푸가초프의 난(러시아 농민전쟁)에서 바시키르 지역 봉기를 이끈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살라와트 율라예프는 1754년 6월, 현재 러시아 바시키르 공화국에 해당하는 오렌부르크 관구의 테케예보(Tekeyevo)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율라이 아즈날린(Yulay Aznalin)은 바시키르 샤이탄-쿠데이 지역의 족장(스타르시나)으로서 러시아 제국 정부에 충성하며 지방 행정에 관여하던 유력한 인물이었다.
1770년대 초, 러시아 제국의 귀족·상인들이 바시키르인의 토지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공장 건설 등을 진행하면서 바시키르 지역의 토지 문제가 심화되었다. 율라이 아즈날린도 상인 트베르디셰프 등에게 토지를 빼앗기는 일을 겪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와 그의 열아홉 살 아들 살라와트는 1773년 예멜랸 푸가초프가 주도한 반란에 합류하였다.
살라와트 율라예프는 바시키르 지역에서 반군을 규합하고 여러 차례 전투를 이끌었다. 그의 군대에는 다양한 민족 구성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1774년 11월 24일 체포되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보다 앞서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스크바로 이송되었고, 1775년에는 주요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들에서 공개적으로 매를 맞고 이마와 얼굴에 낙인(브랜딩)을 찍히는 형벌을 받았다.
1775년 10월, 살라와트와 그의 아버지는 종신형으로 에스토니아 발트해 연안의 로게르비크(Rogervik, 현재의 팔디스키) 요새로 이송되어 강제 노역에 처해졌다. 살라와트 율라예프는 그곳에서 25년간 복역하다가 1800년 10월 8일(그레고리력)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학 활동
살라와트 율라예프는 문맹 퇴치 수준을 넘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당시 볼가-우랄 지역 튀르크 민족들의 공용 문어였던 옛 타타르어로 문서를 작성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시인이자 가수(세센)로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짓고 부르는 활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시적 유산 중 약 500여 줄에 해당하는 작품이 구전 또는 문서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바시키르인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전설·설화·노래가 200여 편 이상 구전되어 왔으며, 이는 바시키르 민속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평가와 유산
살라와트 율라예프는 제정 러시아 시기에는 반란자로 낙인찍혀 그 이름의 언급조차 금지되었으나, 소비에트 연방 시기에는 바시키르 민족의 영웅으로 재평가되었다. 오늘날 러시아 바시키르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그의 이름을 딴 명칭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 러시아 바시키르 공화국의 수도 우파에 그의 기마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마상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 바시키르 공화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 살라바트(Salavat)가 있다.
- 바시키르 공화국의 국장(문장)에 그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 1940년에는 그의 생애를 다룬 소련 영화 《살라바트 율라예프》가 제작되었다.
- 바시키르 공화국의 훈장인 '살라와트 율라예프 훈장'이 1998년 제정되었다.
- 러시아 아이스하키 리그에서 활동하는 팀 '살라바트 율라예프 우파'가 그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 그의 생애를 다룬 오페라 《살라와트 율라예프》(1954)가 작곡가 자기르 이스마길로프에 의해 작곡되었다.
참고 자료
살라와트 율라예프의 생애에 대한 주요 정보는 러시아 제국 시기 문서 기록,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푸가초프의 역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역사가 잉가 그보즈디코바(Inga Gvozdikova)가 그의 과학적이고 문서에 기반한 전기를 연구·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