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관(중국어: 山海關, Shanhaiguan)은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 산하이관구에 위치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 관문이다. 군사 요충지로서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별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리적으로 북서쪽으로는 옌산산맥(燕山山脈)에 의지하고, 동쪽으로는 보하이만(渤海灣)에 접해 있어 '산(山)과 바다(海) 사이의 관문'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역사 및 명칭 변천
산해관 일대는 한(漢)나라 때 임유현(臨渝縣)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당(唐)나라 때 이곳에 관성(關城)을 수축하고 유관(楡關/渝關)이라고 불렀다. 현재의 이름인 산해관이正式으로 붙게 된 것은 1381년 명(明)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洪武帝) 때 장군 서달(徐達)이 관문을 개축하면서부터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다고 하여 산해관이라 칭하고, 산해위(山海衛)를 두어 관리하였다. 이후 척계광(戚繼光)이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산해관은 중국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 중 하나로 발전하였다.
군사적 중요성
산해관은 동북 지역(만주)과 화북 지역(중원)을 연결하는 좁은 평야 통로(각산과 해안 사이 약 7.5km)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명나라 말기에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이끄는 만주족(후금/청)의 침입을 여러 차례 방어하였으며, 오삼계(吳三桂)가 청에 항복하기 전까지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졌다. 1644년 이자성(李自成)의 농민군이 북경을 함락하자,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는 청군과 연합하여 이자성을 격파하였고, 이로 인해 청나라의 중원 지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외교적 의미
조선 시대에는 한중 외교 사행로에서 중국으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외교사절이 북경(연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으며, 지식인들은 이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중화(中華)의 세계, 즉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다고 인식하였다.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안쪽을 '관내(關內)', 바깥쪽을 '관외(關外)' 또는 '관동(關東)'이라 불렀으며, 이는 근대의 관동군(關東軍), 관동주(關東州) 등의 명칭 유래가 되었다.
현대사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33년 1월, 일본군이 산해관을 점령하였으며, 이로 인해 북경 공략의 동부 루트가 열리면서 열하 작전이 진행되었다. 현재 산해관은 중국의 주요 문화유적이자 관광 명소로 보존되어 있으며, 만리장성 구간 중 가장 잘 보존된 관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