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루 히로시(Sandro Hiroshi Parreão Oi, 1979년 11월 19일~ )는 브라질 출신의 전직 축구 선수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윙어)였으며, K리그에서는 등록명 산드로(Sandro)로 활동했다. 일본계 브라질인 3세로, 이름 '히로시(ヒロシ)'에서 일본계 혈통이 드러난다.
개요
산드루 히로시는 브라질 토칸칭스주 아라과이나에서 태어났다. 신장 174cm, 체중 70kg, 오른발을 주발로 사용했다.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이 뛰어났으며, 오른쪽 측면에서 빠른 돌파로 공격의 활로를 여는 플레이가 주특기였다. 슈팅력과 크로스 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소화가 가능했다.
선수 경력
1998년 만 18세의 나이로 브라질 토칸치노폴리스 EC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1999년 리우 브랑쿠 EC로 이적한 뒤, 같은 해 상파울루 FC로 이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상파울루에서는 프란사와 공격진을 이루며 활약했다.
2000년, 나이를 속여 위조 서류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 출생연도는 1979년이었으나, 1980년생으로 문서를 위조한 사실이 폴랴 지 상파울루 신문의 조사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산드루 히로시는 브라질 축구 연맹(CBF)으로부터 180일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위조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은 '산드루 히로시 사건(Caso Sandro Hiroshi)'으로 불리며, 1999년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순위와 강등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파장을 일으켰다. 상파울루는 그가 출전한 경기들에서 승점을 몰수당했고, 이로 인해 보타포구가 강등을 면하고 가마가 대신 강등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법적 분쟁은 결국 CBF가 2000년도 브라질레이루를 정상적으로 개최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대신 클루비 두스 13가 주관한 코파 주앙 아벨란지가 대체 개최되었다.
징계 이후 2001년 CR 플라멩구로 이적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렸고, 2003년 피게이렌시 FC로 옮겨 활약을 재개했다. 같은 해 아랍에미리트의 알자지라 클럽을 거쳐 2004년 과라니 FC로 복귀했으나 팀의 2부 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다.
2005년, K리그의 대구 FC에 입단하며 한국 무대를 밟았다. 대구 FC 소속으로 24경기 10골을 기록하며 득점 공동 3위에 올랐고, 리그컵에서는 12경기 7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대구 FC 창단 이후 첫 수원전 승리를 이끌었다.
2006년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으나, 연습 경기 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장기 이탈했다. 복귀 후 2006년과 2007년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2008년에는 부상 재활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은 후 독단적으로 브라질로 귀국하면서 전남과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2009년 아메리카 FC(나타우)를 거쳐 같은 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며 다시 K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2010년 EC 산투 안드레, 2011년 레드불 브라질을 거쳐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리우 브랑쿠 EC에서 뛰며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국가대표 경력
1997년 브라질 U-17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남미 U-17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했다.
주요 수상
- 브라질 U-17 국가대표팀: 남미 U-17 챔피언십 우승 (1997)
- 상파울루 FC: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2000),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우승 (2001)
- 피게이렌시 FC: 캄페오나투 카타리넨시 우승 (2003)
- 전남 드래곤즈: FA컵 우승 (2006, 2007)
- 수원 삼성 블루윙즈: FA컵 우승 (2009, 2010), 팬퍼시픽 챔피언십 우승 (2009)
- 리우 브랑쿠 EC: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Série A3 우승 (2012)
- 개인: K리그 컵대회 득점왕 (2005)
은퇴 이후
2013년 축구 선수로서 은퇴한 이후, 산드루 히로시는 사격(클레이 사격)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3년 브라질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아내와 함께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