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시즘(社會파시즘, 독일어: Sozialfaschismus, 영어: Social fascism)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과 각국 공산당이 채택했던 정치적 이론이자 전술 노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는 파시즘의 '온건한 날개' 또는 '쌍둥이 형제'로 규정되며, 객관적으로 파시즘과 동일한 반혁명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되었다.
역사적 배경과 성립 1928년 코민테른 제6차 대회에서 공식 채택된 '제3기(제3기간)' 노선의 핵심 이론으로 등장했다. 당시 소련과 코민테른은 자본주의가 '일반적 위기'의 심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판단했고, 부르주아지가 통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파시즘적 독재 방식을 채택한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사회민주당이 노동자 계급을 기만하고 부르주아지의 지지를 확보하는 '사회적 파시즘' 역할을 수행한다고 분석했다.
주요 내용
- 사회민주주의=파시즘: 사회민주주의를 파시즘과 본질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파시즘으로 가는 길을 터주는 '준(準)파시즘'으로 규정했다.
- 공동전선 거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민주주의 세력과의 '공동전선' 또는 '인민전선' 전술을 강력히 거부했다. 사회민주당원들을 '사회파시스트'로 낙인찍고, 나치나 파시스트보다 더 위험한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 대상으로 삼았다.
- 계급 대 계급: "계급 대 계급" 구호 아래, 파시즘과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타도 대상으로 삼고 공산당 단독의 혁명적 공세를 강조했다.
영향과 결과 이 노선은 1930년대 초 독일에서 나치당(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부상기에 독일 공산당(KPD)이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사회파시스트'로 공격하며 연대를 거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반파시즘 세력의 분열을 초래해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을 용이하게 했다는 역사적 비판을 받는다.
노선 전환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파시즘의 위협이 현실화되자, 코민테른은 1935년 제7차 대회에서 '인민전선'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이에 따라 사회파시즘 이론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으며, 파시즘에 맞서 모든 반파시즘 세력(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등)과 연대하는 전술로 전환되었다.
평가 역사학계와 정치학계에서는 사회파시즘 이론이 파시즘의 본질을 오판하고 노동운동의 분열을 초래한 대표적인 전략적 오류로 평가한다. 다만, 당시 소련과 공산주의 운동이 느꼈던 위기감과 사회민주주의의 개혁주의적 한계에 대한 급진적 비판 의식이 결합된 산물로 이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