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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야 사이바바

사티야 사이바바(텔루구어: సత్య సాయిబాబా, Sathya Sai Baba, 1926년 11월 23일 ~ 2011년 4월 24일)는 인도의 영적 지도자이자 교육자이다. 본명은 사티야나라야나 라주(Sathyanarayana Raju)이며, 영국령 인도 제국 마드라스 관구(현재의 안드라프라데시주) 푸타파르티에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

사티야 사이바바는 14세였던 1940년, 자신이 쉬르디 사이바바(Shirdi Sai Baba)의 환생이라고 선언하고 가정과 학업을 떠나 종교적 사명을 시작했다. 1944년 푸타파르티에 신도들을 위한 만디르(사원)가 세워졌고, 1948년부터 1950년까지 현재의 주요 아쉬람인 프라샨티 닐라얌(Prasanthi Nilayam)이 건설되었다. 1954년에는 푸타파르티에 무료 종합 병원을 설립했다. 1968년에는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를 방문했는데, 이는 그가 인도를 떠난 유일한 해외 여행이었다.

그는 인도와 해외에 다수의 학교, 대학, 병원, 자선 단체를 설립했다. 주요 기관으로는 스리 사티야 사이 중앙 트러스트(Sri Sathya Sai Central Trust), 스리 사티야 사이 국제 기구(Sri Sathya Sai International Organization), 스리 사티야 사이 고등교육원(대학교) 등이 있다. 안드라프라데시주 라얄라시마 지역의 식수 공급 프로젝트와 첸나이 시로의 수로 건설 등 대규모 공공사업도 진행했다.

추종자 및 영향력

추종자들은 그를 아바타라(화신)이자 기적을 행하는 존재로 믿었다. 1999년 기준 추종자 수는 약 6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일부 추정치는 최대 1억 명에 이르기도 한다. 그의 조직이 운영하는 자산 총액은 약 4,000억 루피(약 90억 미국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판 및 논란

사티야 사이바바는 생전에 여러 차례 비판과 논란에 직면했다. 물질 창조로 알려진 그의 기적적 수행은 합리주의자들과 마술사들에 의해 손재주나 속임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1976년에는 물리학자 호수르 나라심하이아(Hossur Narasimhaiah)가 통제된 조건 하에 기적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으나, 사이바바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성적 학대, 금융 비리, 살인 등에 대한 여러 고발이 제기되었으나, 그는 어떤 혐의로도 기소된 적은 없다.

사망

2011년 3월 28일 현기증과 심박수 저하로 푸타파르티의 스리 사티야 사이 전문 병원에 입원했으며, 이후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2011년 4월 24일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이틀간 안치되었고, 4월 27일 국가장으로 약 50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프라샨티 닐라얌에 안장되었다. 당시 인도 총리 만모한 싱, 소니아 간디, 나렌드라 모디(현 인도 총리) 등 주요 정치 인사들이 조문했다.

사후

사망 후 그의 개인 거처에서 약 98kg의 금 장신구, 307kg의 은 장신구, 약 1억 1,600만 루피의 현금이 발견되어 트러스트로 귀속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프라샨티 닐라얌의 마하사마디(성묘)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스리 사티야 사이 국제 기구는 전 세계 114개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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