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축서(司畜署)는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사용하는 가축을 기르는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한자 의미로는 '맡을 사(司)', '가축 축(畜)', '관청 서(署)'로, 가축 사육 업무를 담당하는 관서라는 뜻이다.
기원과 변천
사축서는 고려시대의 전구서(典廐署)를 계승한 기관이다. 조선 건국 후에도 전구서가 유지되다가, 이후 예빈시(禮賓寺)에 합쳐져 분예빈시(分禮賓寺)로 불리었다. 1406년(태종 6)에는 분예빈시와 사련소(司臠所)를 합쳐 사축소(司畜所)라 칭하였고, 1466년(세조 12)에 사축서(司畜署)로 개칭되면서 기본 조직을 갖추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조직과 직제
『경국대전』에 따르면 사축서는 종6품 아문(衙門)으로, 제조(提調, 종2품) 1인, 사축(司畜, 종6품) 1인, 별제(別提, 종6품) 2인, 서리(書吏) 4인, 차비노(差備奴) 6인, 근수노(根隨奴) 3인을 두었다. 이후 『속대전』(1746년) 시기에는 조직이 축소되어 제조는 호조판서가 겸임하고, 서리는 서원(書員)으로 격하되었으며 인원도 감축되었다. 1767년(영조 43)에는 사축서가 유명무실하다는 이유로 혁파되어 호조에 합병되기도 하였으나, 『대전회통』(1865년)에서 다시 종6품 아문으로 정비되었다.
업무와 기능
사축서는 돼지, 양, 염소, 거위, 오리 등의 잡축(雜畜)을 사육하여 궁중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이 공급한 가축은 궁중의 가례(嘉禮), 길례(吉禮), 진연(進宴), 진찬(進饌), 선온(宣醞), 사연(賜宴)과 봉조하(奉朝賀)의 월치(月致), 노인(老人)의 세찬(歲饌), 기우제(祈雨祭), 보사제(報謝祭), 각군문기제(各軍門旗祭), 칙사(勅使) 및 표해인(漂海人)의 공궤(供饋) 등에 사용되었다.
위치
처음에는 숭례문(崇禮門) 밖에 위치하였으나, 후에 미동(美洞)으로 옮겼다.
의의
사축서는 궁중 조달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민간 축정(畜政)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바는 적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의 농림축산식품부 중 축산 관련 업무의 일부를 담당하였던 기관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