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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전투

사천성 전투(泗川城戰鬪)는 1598년 10월, 조선 경상도 사천 지역의 사천선진리왜성(사천신성)과 사천고성(사천읍성) 일대에서 벌어진 정유재란(1597~1598) 시기의 전투이다. 일본군은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인솔하는 약 7천 명의 병력으로, 명나라 장수 동일원(董一元)과 조선 장수 정기룡이 지휘하는 조명연합군 약 4만 명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로 기록된다.

배경

정유재란 발발 후 일본군은 울산, 순천, 사천 등지에 왜성을 축조하고 장기 농성에 돌입하였다. 1598년 9월 말, 조명연합군은 서로군·중로군·동로군으로 편성된 삼로군과 수로군을 동시에 남진시키는 '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을 개시하였다. 이 중 동일원이 지휘하는 중로군 4만 명이 사천으로 진격했다. 사천은 부산과 순천왜성·남해왜성의 중간에 위치한 요충지로, 이곳을 함락시키면 서쪽 일본군과의 연락이 차단될 위험이 있었다.

당시 사천 일대에는 시마즈 요시히로를 중심으로 한 시마즈 가문의 5개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시마즈군은 망진왜성, 영춘왜성, 사천고성 등을 전진 방어진지로 삼고, 주력인 사천선진리왜성(선진리성)을 최종 방어선으로 편성하였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다른 가문의 지원 제의를 거절하고 시마즈 가문의 병력만으로 조명연합군에 맞서기로 결정하였다.

경과

1598년 9월 20일, 조명연합군 중로군은 진주의 망진왜성과 영춘왜성을 점령하고 사천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전진 방어진지의 병력을 사천선진리왜성으로 집중시키기로 결정하였다. 9월 28일 밤, 경상우병사 정기룡이 이끄는 조선군이 사천고성을 포위하고 야습을 감행하여 일본군은 많은 병력 손실을 입고 선진리왜성으로 철수하였다. 조명연합군은 사천고성을 점령한 후 10월 1일 선진리왜성 공격에 나섰다.

전투 중 일본군은 연합군의 식량창고를 기습적으로 불태워 연합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선진리왜성 후방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복병을 배치하였으며, 다량의 조총, 지뢰, 쇳조각을 포탄 대신 장전한 대포 등을 활용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다. 연합군의 공격이 지치자 요시히로는 복병을 출격시켜 연합군의 대열을 교란하고 본대도 공세로 전환하여 결국 연합군을 퇴각시켰다.

결과

조명연합군은 약 3,000~8,000명의 사상자를 내며 패퇴하였다. 일본 측 사료에는 명군 병력을 20만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등 다른 사서에는 연합군 병력이 약 4만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명연합군의 패배 원인으로는 일본군을 경시한 데 비해, 시마즈군이 충분한 대비를 갖추고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한 점이 주로 지목된다.

이 전투는 정유재란 말기 사로병진작전의 일환이었으나 연합군의 실패로 끝나면서, 이후 순천왜성 공략 등 다른 전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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