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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온지 긴츠네

사이온지 긴츠네(일본어: 西園寺公経, 1171년~1244년)는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전기에 걸쳐 활동한 구교(公卿)이자 가인(歌人)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사이온지 긴쓰네'로도 표기된다.

사이온지 긴츠네는 내대신(内大臣) 후지와라노 사네무네(藤原実宗)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최종 관위는 종1위(従一位)·태정대신(太政大臣)에 이르렀다. 그는 사이온지가(西園寺家)의 실질적인 비조(鼻祖)로 평가받는 인물로, 가문명의 유래가 된 교토의 사찰 사이온지(西園寺)를 직접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는 가마쿠라 막부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전개되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조카사위로서 막부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조큐의 난(承久の乱, 1221년) 당시에는 사전에 난의 정보를 막부에 알려 막부 측의 승리 이후 권력 기반을 강화하였다. 이후 사위 구조 미치이에(九条道家)와 함께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간토모시쓰기(関東申次)에 취임하여 막부와 조정 사이의 교섭을 담당했다.

또한 닌지 3년의 정변(仁治三年の政変, 1242년)에서는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사가 천황(後嵯峨天皇)을 옹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자신의 손녀딸인 사이온지 깃시(西園寺姞子)를 고사가 천황의 중궁으로 삼아 이후 지묘인 왕통(持明院統)이 막부와 가까운 관계를 맺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의 후손으로는 가마쿠라 막부 4대 쇼군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와 간파쿠 니조 요시자네(二条良実) 등이 있으며, 시조 천황(四条天皇)·고후카쿠사 천황(後深草天皇)·가메야마 천황(亀山天皇) 등의 증조부가 되기도 하였다.

문학적으로는 오쿠라 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 제96번에 '입도 전 태정대신(入道前太政大臣)'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와카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세찬 바람에 벚꽃잎 흩날리네, 지는 것은 눈송이가 아니라 바로 이 몸이어라"라는 구절로 알려진 노래가 전한다.

한편, 당대 인물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동시대의 구교였던 다이라노 쓰네타카(平経高)는 자신의 일기 《히라도키》(平戸記)에서 그를 "한 시대의 간신"이라고 냉소적으로 평하기도 하였다. 이는 그가 막부를 추종하며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확대하는 데 집중했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이온지 긴츠네는 간겐 2년(1244년) 8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74세였다. 그가 창건한 사이온지(西園寺)라는 가문명과 사찰의 이름은 이후 일본 공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사이온지가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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