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는 아라비아 반도 중부 네지드(Najd)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우드 가문(알 사우드)의 세 번에 걸친 국가 건설 과정과 이슬람교 수니파의 한 갈래인 와하비즘(Wahhabism, 무와히두니야)과의 동맹을 핵심으로 전개된다.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193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이븐 사우드)에 의해 선포된 제3사우디국가에 기원을 둔다.
1. 제1사우디국가 (에미리야트 디리야, 1744~1818) 1744년 네지드 지역의 디리야(Diriyah) 통치자 무하마드 이븐 사우드와 이슬람 개혁자 무하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가 동맹을 맺으며 제1사우디국가가 수립되었다. 와하비즘을 정치적·종교적 이념으로 삼아 네지드 대부분과 헤자즈(메카, 메디나)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1818년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의 아들 이브라힘 파샤의 원정군에 의해 디리야가 함락되고 사우드 가문의 지도자들이 처형되면서 멸망했다.
2. 제2사우디국가 (에미리야트 네지드, 1824~1891) 1824년 투르키 이븐 압둘라 이븐 사우드가 리야드를 수도로 하여 제2사우디국가를 재건했다. 제1국가에 비해 영토는 축소되었으나 네지드 지역 내에서의 통치를 공고히 했다. 19세기 말 내부 계승 분쟁과 알 라시드 가문(하일 토후국)의 부상으로 인해 1891년 리야드가 함락되고 사우드 가문은 쿠웨이트로 망명하면서 막을 내렸다.
3. 제3사우디국가 및 왕국 수립 (1902~현재) 190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이븐 사우드)가 쿠웨이트에서 출발해 리야드를 탈환하며 제3사우디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이크완(Ikhwan, 형제단)이라는 종교적 군사 조직을 동원해 알 아하사(1913), 하일(1921), 헤자즈(1924~1925), 아시르(1920년대) 등을 차례로 정복했다. 1927년 '네지드 및 헤자즈 왕국'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았으며, 1932년 9월 23일 국호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변경하고 절대 군주제를 선포했다.
4. 석유 발견과 근대화 (1938~현재) 1938년 담맘(Dammam) 7호 유정에서 상업적 양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국가 재정 기반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석유 수출이 시작되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1950년대 이후 인프라 건설, 교육, 의료, 행정 체계 정비 등 급속한 근대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했으며, 1973년 석유 파동 이후 국제 정치·경제에서 위상이 크게 상승했다.
5. 현대사의 주요 이슈
- 왕위 계승: 압둘아지즈 사후 그의 아들들(사우드, 파이살, 칼리드, 파하드, 압둘라, 살만)이 순차적으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책봉 이후 차기 세대로의 권력 승계가 진행 중이다.
- 사회 개혁: 2016년 '비전 2030' 발표 이후 여성 운전 허용,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 종교 경찰(하야) 권한 축소 등 사회 개방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 대외 관계: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이자 석유 강대국으로서 미국과 전통적 우방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란과의 지역 패권 경쟁, 예멘 내전 개입, 카타르 단교 사태(2017~2021) 등 중동 정세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 인권 문제: 정치 참여 제한, 표현의 자유 억압, 사형 집행, 여성 인권(남성 보호자 제도 잔재),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2018) 등으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6. 역사 서술상의 유의점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역사 서술은 사우드 가문의 정통성과 와하비즘의 종교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오스만 제국 기록, 영국 식민지 문서, 지역 토후국들의 구전, 시아파 및 수피파 관점의 기록 등은 공식 사료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근현대사 주요 사건(예: 1979년 대모스크 점거 사건, 1990~1991년 걸프 전쟁 당시 국내 상황 등)에 대한 상세한 내부 문서는 여전히 분류되어 있어 연구자 접근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