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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 산성

사와 산성(佐和山城)은 일본 시가현 히코네시에 위치했던 연곽식 산성(連郭式山城)이다. 일본어로는 사와야마조(さわやまじょう)라고 읽는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을 실질적으로 이끈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거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사와 산성의 축성은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사호(佐保) 가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는 아자이(浅井) 가문의 지성(支城)으로 사용되었다. 1570년대에 아자이 가문의 가신이자 성주였던 이소노 가즈마사(磯野員昌)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의 전투에서 항복한 후, 오다 가문의 가신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가 입성하여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1582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이후 기요스 회의(清洲会議)에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 토벌에 공을 세운 호리 히데마사(堀秀政)에게 사와 산성이 주어졌다. 이후 호리 가문이 전봉(転封)되자 호리오 요시하루(堀尾吉晴)가 입성하였다.

1590년경,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고부교(五奉行) 중 한 명이었던 이시다 미쓰나리가 입성하여 성을 대규모로 보수하였다. 산 정상에는 5층 또는 3층의 천수(天守)를 세워 위신을 과시하였으며, 당시 "미쓰나리에게는 과분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시마의 사콘(島の左近)과 사와 산의 성이다"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다만 미쓰나리는 부교 임무 수행을 위해 후시미성(伏見城)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 성의 관리는 그의 아버지 이시다 마사쓰구(石田正継)가 맡았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이 패배한 후, 사와 산성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 군을 선봉으로 한 공격을 받아 2일 만에 함락되었다. 이때 미쓰나리의 아버지와 처 등 성 안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사망하였다.

폐성 이후

이시다 미쓰나리 사후, 도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인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가 이 지역에 입봉하여 입성하였다. 그러나 나오마사는 미쓰나리의 선정을 그리워하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불식시키기 위해 히코네성(彦根城) 축성 계획을 세웠다. 나오마사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부상으로 1602년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이이 나오쓰구(井伊直孝)가 계승하여 히코네성을 완성하였다. 1606년 나오쓰구가 히코네성으로 이주하면서 사와 산성은 폐성되었다.

대부분의 건조물은 히코네성으로 이축되거나 파각되었기 때문에, 현재 성터에는 석벽과 성루 일부만 남아 있다.

현황

사와 산성터는 JR 서일본 히코네역에서 도보 약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산 정상에서는 히코네성과 비와호(琵琶湖)를 조망할 수 있다. 인근에는 1976년 착공되었으나 미완으로 남은 테마파크인 '사와 산성 유원'이 있다. 2007년에는 히코네성 축성 400주년 기념 이벤트의 일환으로 '사와 산 일야성 복원 프로젝트'가 개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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