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드라굽타(Samudragupta, 재위 약 335년~375년)는 고대 인도 굽타 제국의 제2대 황제이다. 굽타 문자로는 '사-무-드라-굽타'로 표기된다. 그는 굽타 제국의 창시자이자 초대 황제인 찬드라굽타 1세와 리차비 왕조의 공주 쿠마라데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군사적 천재이자 예술의 후원자였던 그는 인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의 신하였던 하리세나가 작성한 알라하바드 기둥 비문(프라샤스티, 찬사문)은 그의 군사적 업적과 통치에 대한 주요 사료이다.
군사 활동 및 영토 확장
사무드라굽타는 남부 지역(닥시나파타)의 12개 왕들을 포로로 잡았다가 풀어주었고, 북부 지역(아리아바르타)의 8개 왕들을 정복하여 그들의 영토를 제국에 병합하였다. 또한 중앙 인도의 숲 지역(아타비카) 왕들을 복종시켰다. 그의 직접 통치 아래 있던 제국은 서쪽으로는 라비강(현재 펀자브), 동쪽으로는 브라마푸트라강(현재 아삼주), 북쪽으로는 히말라야 산기슭, 남서쪽으로는 중앙 인도까지 뻗어 있었다. 남동부 해안의 여러 통치자들도 그의 조공국이 되었다.
국경 지역에서는 사마타타(현재 벵골), 다바카(현재 아삼), 카마루파(현재 아삼), 네팔, 카르트리푸라(현재 우타라칸드)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조공을 바쳤으며, 말라바족, 아르주나야나족, 야우데야족, 마드라족, 아비라족 등의 부족들도 그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또한 서북부의 쿠샨 제후국들과 사카족, 스리랑카의 메가바르나 왕을 비롯한 섬나라 통치자들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주화와 문화
사무드라굽타는 굽타 제국 최초로 금화를 주조한 통치자였다. 그의 주화는 쿠샨 제국의 주화를 모방한 표준형 외에도 궁수형, 전투 도끼형, 호랑이 사냥꾼형, 리라(비나) 연주자형, 아슈바메다(말 희생제)형 등 여러 유형이 있다. 특히 리라 연주자형 주화는 그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시인왕'(카비라자)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정도로 시적 재능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그의 시 작품은 현존하지 않는다.
종교와 의례
사무드라굽타는 비슈누파 힌두교를 신봉하였으며, 에란 비문에는 그가 비슈누 신상을 사원에 설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제국의 주권을 증명하기 위해 고대 인도의 아슈바메다(말 희생제) 의식을 거행하였고, 이를 기념하는 금화를 발행하였다. 한편 불교에 대해서도 관대하여, 스리랑카 왕 메가바르나가 부다가야에 불교 수도원을 건설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평가와 유산
사무드라굽타는 빈센트 스미스에 의해 '인도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의 통치는 정치적 확장, 행정 효율성, 그리고 산스크리트 문학과 힌두교 의례에 대한 문화적 후원으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팽창 정책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찬드라굽타 2세에 의해 계승되었다.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정확한 재위 시작 연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며(약 319년~350년 사이), 사망 연도 역시 학자에 따라 370년~380년 사이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