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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

사마의(司馬懿, 179년 ~ 251년)는 중국 후한 말기부터 삼국시대 위나라에 걸쳐 활동한 정치가이자 군사 지휘관이다. 자는 중달(仲達)이며, 하내군 온현(溫縣, 현재의 중국 허난성 원현 일대) 출신이다. 흔히 《삼국지연의》를 통해 제갈량의 라이벌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생애와 주요 활동

사마의는 경조윤(京兆尹)을 지낸 사마방(司馬防)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부터 총명하고 식견이 넓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201년에 상계연(上計掾)으로 천거되었으며, 이후 조조에게 발탁되어 조조·조비·조예·조방에 이르는 네 명의 위나라 군주 아래에서 관직을 지냈다.

조비가 위나라 황제로 즉위한 뒤에는 상서(尙書), 무군대장군(撫軍大將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며 조비의 신임을 받았다. 조비가 죽을 때에는 조진, 진군과 함께 고명대신으로 지목되어 어린 황제 조예를 보좌하였다.

군사적으로는 제갈량이 이끄는 촉한의 여러 차례 북벌을 방어한 인물로 특히 유명하다. 231년과 234년의 전투에서는 지구전(持久戰) 전략을 구사하여 촉한군을 퇴각시켰으며, 특히 234년 오장원(五丈原)에서 제갈량이 사망한 전투가 대표적이다. 238년에는 요동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토벌하였다.

고평릉의 변과 정권 장악

249년, 사마의는 당시 위나라의 실권자였던 조상(曹爽) 일파를 제거하는 정변을 일으켰다. 조상이 황제 조방과 함께 고평릉에 성묘를 떠난 사이 쿠데타를 단행하여 조상 일파를 숙청하고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를 고평릉의 변(高平陵의 變)이라고 한다.

사후 추존과 진(晉)나라 건국

사마의 사후, 그의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가 권력을 이어받았으며, 손자 사마염이 265년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서진(西晉)을 건국하였다. 이때 사마의는 고조 선황제(高祖 宣皇帝)로 추존되었다.

평가

사마의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당 태종 이세민은 진서(晉書)에서 사마의의 탁월한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수비 위주의 군사 운영과 후임 황제에 대한 정변을 두고 충신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비판한 기록이 있다. 한편 《삼국지연의》에서는 치밀하고 음흉한 인물로 그려지기도 했으나, 정사(正史)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위나라의 명실상부한 공신이자 후대 왕조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사마의에 관한 주요 사료로는 《진서(晉書)》 선제기(宣帝紀)와 《삼국지》 관련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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