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카미스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1914년 12월 22일부터 1915년 1월 17일까지 오스만 제국 동부 아나톨리아의 사리카미스(Sarıkamış)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군과 러시아 제국군 사이에 벌어진 주요 전투이다. 오스만 제국이 코카서스 지역의 러시아 영토를 탈환하고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려던 시도로 시작되었으나, 오스만 제국군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배경
1914년 10월 오스만 제국은 동맹국 측에 가담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오스만 제국의 전쟁 장관 엔베르 파샤(Enver Pasha)는 러시아령 코카서스를 점령하고, 그곳에 거주하는 무슬림 민족들의 봉기를 유도하여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는 1914년 겨울, 오스만 제3군을 이끌고 러시아 코카서스군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명령했다.하지만 오스만 제3군은 고지대 산악 지형에서의 겨울 작전에 대한 준비가 매우 미흡했다. 병사들은 겨울용 의복과 장비가 부족했고, 보급선은 취약했으며, 지휘관들은 혹독한 날씨와 지형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엔베르 파샤는 작전 계획에서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전투의 경과
엔베르 파샤의 계획은 오스만 제3군이 사리카미스 주변에서 러시아군을 포위 섬멸하는 것이었다. 오스만군은 세 개로 나뉘어 산악 지형을 통해 러시아군 후방으로 침투를 시도했다. 그러나 12월 말부터 시작된 작전은 극심한 추위와 폭설로 인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기온과 깊은 눈으로 인해 수많은 병사들이 동상과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거나 전투력을 상실했다.실제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수만 명의 오스만 병사들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쓰러졌다. 보급선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병사들은 식량과 탄약 없이 고립되었다. 러시아군은 오스만군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잠시 당황했지만, 잘 조직된 방어선과 보급 우위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저항했다.
1915년 1월 초, 오스만군은 사리카미스 외곽까지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미 병력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였다. 러시아군은 잔존 오스만 병력을 상대로 반격에 나섰고, 오스만 제3군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엔베르 파샤는 참패를 인정하고 1월 중순에 이스탄불로 돌아갔다.
결과 및 영향
사리카미스 전투는 오스만 제국에게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오스만 제3군 병력 약 15만 명 중 최소 75,000명에서 100,0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그 중 대다수는 전투가 아닌 추위, 질병, 굶주림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었다. 반면 러시아군의 피해는 약 3만 명 미만으로 훨씬 적었다.이 전투의 패배는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역량을 심각하게 약화시켰고, 코카서스 전선에서의 주도권은 러시아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엔베르 파샤의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으나, 그는 이 패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가장 비극적인 결과 중 하나는 이 패배가 이후 오스만 정부가 아르메니아인을 러시아의 협력자로 지목하며 아르메니아인 학살의 빌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오스만 지도부는 패배의 책임을 내부의 소수 민족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1915년 이후의 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주 및 학살로 이어지는 중요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사리카미스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가장 혹독하고 비참한 전투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