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 조약(Treaty of Zaragoza)은 1529년 4월 22일, 포르투갈 왕국의 주앙 3세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의 국왕인 카를 5세(카를로스 1세)가 아라곤 왕국의 사라고사 시에서 서명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사라고사 항복(Capitulation of Zaragoza)'이라고도 불린다.
이 조약은 1494년 체결된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후속 조약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카스티야(스페인)와 포르투갈의 영향권을 규정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당시 두 국가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대서양에 설정된 경계선의 반대편(동아시아)에 해당하는 자오선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은 말루쿠 제도(향료 제도, 현재 인도네시아의 말루쿠)의 귀속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였다. 1520년대 양국의 탐험대가 태평양에 도달하면서 이 분쟁은 본격화되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말루쿠 제도의 동쪽 약 297.5리그(약 1,425km) 지점, 즉 동경 약 144도 30분에 해당하는 자오선을 새로운 경계선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자오선은 뉴기니 섬의 중앙부를 통과한다. 이 경계선을 기준으로 서쪽 지역은 포르투갈의 영향권으로, 동쪽 지역은 스페인의 영향권으로 귀속되었다. 이에 따라 말루쿠 제도는 포르투갈의 독점적 지위가 인정되었으며, 포르투갈은 그 대가로 스페인에게 35만 두카트(dukat)를 배상금으로 지급하였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말루쿠 제도를 포르투갈에 양보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 조약을 '사라고사의 항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스 등과의 유럽 내 전쟁(꼬냑 동맹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포르투갈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필요했던 상황이 조약 체결의 배경이 되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필리핀은 자오선의 서쪽에 위치하였으나 조약 문구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이후 스페인이 1542년에 공식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또한 일본, 중국(마카오) 등 극동 지역에 대한 포르투갈의 진출 권리가 사실상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1580년 포르투갈 왕위가 스페인 왕실로 넘어가면서 이베리아 연합이 형성되었고, 이후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확장에 나서면서 사라고사 조약과 토르데시야스 조약 모두 실효성을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