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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파

사두개파(Sadducees, 또는 사두가이파)는 고대 유대교의 주요 유파 중 하나로,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예루살렘 성전 파괴 시기)까지 활동한 종교·정치 세력이다.

어원

'사두개파'라는 명칭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Zadok, צָדוֹק)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의롭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형용사 '차디크'(tsaddiq)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었으나, 모음 변화를 설명하기 어려워 사독을 계승하는 제사장 계열이라는 해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구성과 성격

사두개파는 주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 계급과 귀족, 유력자들로 구성되었다. 바리새파(Pharisees)가 민중 중심의 종교적 성격이 강했던 반면, 사두개파는 소수 엘리트 중심의 정치적 색채가 짙었다. 이들은 대제사장직을 독점하고 산헤드린 공회(Sanhedrin)에서도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며 유대 사회의 종교·정치적 실권을 쥐고 있었다.

신학적 입장

사두개파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세속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주요 신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모세오경(토라)만 권위 인정: 바리새파가 구전 율법과 선지서 등 다양한 경전 전통을 중시한 것과 달리, 사두개파는 성문화된 모세의 율법(토라)만을 유일한 권위로 받아들였다.
  • 부활 부정: 내세에서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다.
  • 천사와 영의 존재 부정: 천사나 악마, 영적인 존재의 실재를 믿지 않았다(마가복음 12:18, 사도행전 23:8).
  • 자유 의지 중시: 하나님의 섭리보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치적 입장

로마 제국에 우호적인 친로마파로서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였다. 헬레니즘(그리스) 문화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으며, 이는 마카베오(Maccabees) 혁명 시기에는 민족적·종교적 이유로 냉대를 받았으나, 이후 하스몬 왕조와 헤롯 왕조의 친로마 정책과 맞물려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역사적 소멸

사두개파의 활동 근거지는 예루살렘 성전이었다. 그러나 기원후 70년 로마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유대-로마 전쟁)로 인해 그들의 존재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에 반해 바리새파의 전통은 랍비 유대교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승되었다.

복음서 및 신약성경에서의 언급

신약성경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사두개파는 예수와 바울로(바울)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자주 등장한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마태복음 3:7)이라고 비판했으며, 예수는 부활 논쟁(마태복음 22:23-33) 등에서 사두개파와 신학적으로 대립하였다. 다만 복음서에서 사두개파는 바리새파보다 비난의 빈도가 적은데, 이는 그들의 영향력이 주로 예루살렘 상층부에 국한되어 민중과의 접점이 적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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