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 7현인(佐賀の七賢人)은 에도 시대 말기(막말)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활동하며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성공에 기여한 사가번(佐賀藩, 현재의 사가현) 출신의 주요 인물 7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명칭은 고대 그리스의 '7현인'에서 유래하였으며, 실제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1년으로 알려져 있다.
사가번은 막말 당시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근대화를 추진하여 일본 내에서도 선진적인 번(藩)으로 평가받았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의 핵심 인재를 다수 배출하였다. 사가 7현인은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인물들로서, 사가현 지역민들에게 지역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7현인의 면면과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
- 나베시마 나오마사(鍋島直正, 1815~1871): 사가번 제10대 번주. 파탄 상태였던 번의 재정을 개혁하고, 암스트롱포 도입, 종두법 시행 등 근대화 정책을 주도하였다. 메이지 신정부에서는 홋카이도 개척장관을 역임하였다.
- 사노 쓰네타미(佐野常民, 1823~1902): 서구 선진 기술을 도입하여 일본의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일본적십자사의 전신인 박애사(博愛社)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을 지냈다.
- 시마 요시타케(島義勇, 1822~1874): 홋카이도 개척사에 참여하여 북방 개척에 기여하였고, 삿포로시(札幌市)의 시가지 건설에 착수하였다. 1874년 사가의 난(佐賀の乱)에 가담하여 처형되었다.
- 소에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 1828~1905): 외교관으로 활약하였으며, 마리아 루스호 사건(マリア・ルス号事件)에서 중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였다.
- 오키 다카토(大木喬任, 1832~1899): 문부대신으로서 일본 근대 교육제도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수도를 도쿄로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레고리력 도입, 단발령, 국민개병제 등 각종 제도 개혁을 주도하였으며 추밀원 의장을 역임하였다.
- 에토 신페이(江藤新平, 1834~1874): 사법성(司法省) 수장으로서 일본 근대 사법제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874년 사가의 난에 가담하여 처형되었다.
-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1838~1922): 두 차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였고,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을 창립하였으며 철도 창설에도 힘썼다.
이들 7인 외에 국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에다요시 신요(枝吉神陽, 소에지마 다네오미의 친형)를 포함하여 '8현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소수의견도 존재한다. 에다요시 신요는 7현인 중 5명을 교육한 스승이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전인 1863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유신에 직접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