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프리드리히 브뤼크너(Wilhelm Friedrich Brückner, 1884년 12월 11일 ~ 1954년 8월 20일)는 독일의 군인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수석 부관(chief adjutant)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나치당의 초기 구성원이었으며, 돌격대(SA) 장군으로 최종 계급은 SA상급집단지도자(SA-Obergruppenführer)였다.
생애
브뤼크너는 1884년 12월 11일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태어났다. 1905년 아비투어(Abitur, 대학 입학 자격 시험)를 마친 후, 스트라스부르, 프라이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뮌헨의 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수학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바이에른 보병 연대의 장교로 참전하였으며, 중위(Leutnant) 계급으로 전역하였다.
전후에는 자유군단 에프(Freikorps Epp)에 가담하여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 진압에 참여하였다. 이후 대학에 복학하였고, 3년간 영화 기술자로 근무하였다. 1922년 말 나치당에 입당하였고, 동시에 돌격대(SA)에 가입하였다. 1923년 2월 1일에는 뮌헨 SA 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1923년 11월 9일, 뮌헨에서 발생한 히틀러의 뮌헨 폭동(맥주홀 폭동)에 참여하였으며, 실패 후 반역죄로 기소되어 1924년 4월 1일 15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미결 구금 기간이 공제되어 즉시 석방되었다. 이후 다시 SA 연대 지휘권을 되찾았고, 1924년부터 1928년까지 재독일 독일 문화 협회(VDA)에서 사무총장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30년 9월 히틀러의 부관이 되었고, 히틀러의 경호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2월 20일 히틀러의 수석 부관(Chief Adjutant)으로 임명되어 총통의 모든 개인 수행원, 시종, 경호원 및 부관들을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직책에서 그는 히틀러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되었다. 1934년 11월 9일 히틀러로부터 SA상급집단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40년 10월, 브뤼크너는 수석 부관에서 해임되었고, 그 자리는 율리우스 샤우브(Julius Schaub)가 대체하였다. 이는 마르틴 보어만(Martin Bormann)의 배후 공작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후 독일 육군(Heer)에 합류하여 연말까지 대령(Oberst) 계급에 도달하였다.
전후인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군 당국에 의해 억류되었으며, 1948년 9월 14일 탈나치화 재판에서 주요 범죄자로 분류되어 3년 6개월 노동 수용형과 재산 일부 몰수 판결을 받았다. 석방 후 바이에른의 누스도르프(Nußdorf)에 위치한 헤름스도르프(Herbsdorf)에서 홀로 생활하다가 1954년 8월 2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