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호아 학살(베트남어: thảm sát Bình Hoà, 영어: Bình Hòa massacre)은 베트남 전쟁 기간인 1966년 12월 3일부터 12월 6일 사이, 남베트남 꽝응아이성 빈선현 빈호아 마을에서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가 약 430명의 마을 주민을 학살하였다고 주장되는 사건이다.
개요
이 사건은 일부 진영, 특히 베트남 측과 한국의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기된 주장에 근거한다. 한국어 위키백과와 영어 위키백과, 베트남어 위키백과 등 여러 언어의 백과사전에 별도의 문서로 수록되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개념이지만, 사건의 구체적 사실 여부와 규모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군의 공식적인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서술상 "추정" 또는 "주장"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사건 경위(주장 측 서술)
주장에 따르면, 1966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 일대에서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가 소탕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노인, 어린이였으며, 이 중 임산부가 7명 내지 21명 포함되어 있었다는 서로 다른 수치가 존재한다. 일부 증언에서는 마을 전체가 불태워지고 수백 마리의 가축이 함께 살해되었다고 한다.
한편 2000년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마을 내 기념비에는 학살 시기가 1966년 10월 22일, 24일, 26일로 기록되어 있고 사망자 수가 403명으로 명시되어 있기도 하여, 정확한 날짜와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배경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베트남 캄란만에 주둔한 이후 1966년 8월 꽝남성 쭈라이로 이동하여 작전을 수행하였다. 청룡부대가 관할한 꽝남성, 다낭, 꽝응아이성 일대는 북위 17도선과 인접한 중남부 지역으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빈호아가 속한 꽝응아이성은 청룡부대의 작전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논란과 후속 조치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식적인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양국 간의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빈호아 마을에는 이 사건을 기리는 "증오비"(BIA CAM THU)가 세워져 있으며, 비문에는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94년에는 영국인이, 1995년에는 일본의 피스보트(Peace Boat)가 관련 추모 활동과 위령비 건립을 진행하였다.
2018년 4월, 대한민국의 여러 시민사회 단체는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개최하였다. 이 법정은 모의법정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빈호아 학살을 포함한 관련 사건들에 대한 진상 조사를 권고하였다.
관련 사건
빈호아 학살은 같은 시기 한국군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주장되는 다른 학살 사건들, 즉 퐁니·퐁넛 마을 학살, 하미 마을 학살 등과 함께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관련 민간인 피해 사례의 하나로 언급된다. 꽝응아이성 지역에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수는 여러 자료에서 집계되어 제시되고 있다.
평가
빈호아 학살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에서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다. 베트남 측과 한국의 시민사회 일부는 이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대한민국 정부와 군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사건의 정확한 규모, 날짜,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학술적·사법적 검증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