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전투는 1683년 9월 11일부터 9월 12일까지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수도 빈(비엔나)에서 발발한 전투이다. 제2차 빈 공방전(1683년 7월 17일 ~ 9월 12일)의 마지막 이틀간 벌어진 결정적 교전으로, 오스만 제국과 유럽 기독교 연합군 간의 대규모 전투이다.
배경 오스만 제국은 1529년 제1차 빈 공방전 이후 다시 빈을 정복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1683년, 그랜드 비지어 카라 무스타파 파샤가 지휘하는 오스만 제국군(추산 약 9만~30만 명)은 7월 14일부터 빈을 포위하였다. 빈城内의 방어군은 에른스트 뤼디게르 그라프 폰 스트람베르크 장군이 지휘하는 약 15,000명의 병력과 8,700여 명의 민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370문의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투 경과 포위가 장기화되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구원군이 도착하였다. 구원군은 신성 로마 제국 제후국 및 폴란드군을 포함하여 약 10만 명에 달했다. 결정적 전투는 9월 11일 시작되어 9월 12일에 절정에 달했으며, 주요 전장은 빈 교외의 칼헨부르크(Leopoldsberg) 언덕 일대였다.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총사령관을 맡아 연합군을 지휘하였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병전이 펼쳐진 것으로 평가된다.
전투 결과 및 의의 기독교 연합군이 승리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은 빈 점령을 포기하고 후퇴하였다. 이 전투는 약 300년간 지속된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전투 이후 16년 동안 오스트리아 대공국은 헝가리와 트란실바니아를 차례로 탈환하였고,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다. 또한 1684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 주도로 신성 동맹이 결성되어 연합군의 발칸반도 진격이 본격화되었다.
참고 빈 전투는 오스만 제국이 유럽 기독교 세계로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게 저지한 역사적 분수령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1698년 카를로비츠 조약까지 이어진 대(大)튀르크 전쟁의 서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