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텔스바흐 가문(독일어: Haus Wittelsbach)은 독일 바이에른 지역을 중심으로 11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각지에서 군주를 배출한 귀족 가문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바이에른의 공작·선제후·국왕, 팔츠 선제후, 그리스의 국왕,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국왕(칼마르 동맹),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등을 배출하였다.
기원과 설립
비텔스바흐 가문은 11세기 무렵 신성 로마 제국 남부 지방을 통치하던 바벤베르크 가문의 분가에서 시작되었다. 1124년경 샤이에른 백작 오토 4세가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가문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1180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바이에른의 팔츠 궁정백이었던 오토 1세에게 바이에른 공작위를 하사하면서 비텔스바흐 가문은 본격적으로 바이에른의 통치 가문으로 자리잡았다. 오토 1세의 아들 루트비히 1세는 1214년 결혼을 통해 라인 궁정백령을 상속받아 세력을 확장하였다.
분할과 확장
1314년 루트비히 4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으로 선출되면서 가문은 유럽의 명문가 반열에 올랐다. 루트비히 4세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을 확보하고 저지대 국가(네덜란드, 제일란트 등)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러나 그의 사후 가문은 팔츠계와 바이에른계로 분할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영토 분할과 통합을 반복하였다. 1356년 금인 칙서에서 팔츠계는 선제후 지위를 유지하였으나 바이에른계는 선거권을 박탈당했다. 1506년 알브레히트 4세에 의해 바이에른계가 재통합되었고, 장자상속 원칙이 확립되었다.
종교 개혁과 30년 전쟁
종교 개혁 시기 팔츠계 비텔스바흐 가문은 루터파와 칼뱅파 사이에서 선제후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종교적 입장이 변화하였다. 반면 바이에른계는 가톨릭을 유지하였으며, 대항종교개혁을 주도하였다. 1618년 30년 전쟁 당시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 왕으로 선출되었으나 합스부르크 가문에 의해 축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팔츠계의 선제후 지위는 바이에른계로 넘어갔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팔츠계가 선제후 지위를 회복하였다.
바이에른 왕국과 그리스 왕국
1777년 바이에른계 비텔스바흐 가문이 단절되면서 팔츠계의 카를 테오도어가 바이에른을 상속받았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기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나폴레옹과의 협력을 통해 1805년 바이에른 선제후국을 바이에른 왕국으로 승격시켰다. 한편 1832년 런던 회의에서 루트비히 1세의 차남 오톤이 그리스의 초대 국왕으로 선출되어 1862년 폐위될 때까지 그리스 왕국을 통치하였다.
가문의 종말과 현재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전하면서 바이에른 왕국은 폐지되었고, 마지막 국왕 루트비히 3세는 퇴위하였다. 현재 가문의 수장은 바이에른 공작 프란츠(1933년생)이다.
주요 인물
비텔스바흐 가문의 주요 인물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와 카를 7세,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노이슈반슈타인 성 건축),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시씨), 스웨덴 국왕 칼 10세 구스타브·칼 11세·칼 12세, 그리스 국왕 오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