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다라셀리아(Vitali Daraselia, 1957년 1월 24일 ~ 1982년 12월 13일)는 소련·조지아의 축구 미드필더이자, 1970·80년대에 활약한 전설적인 선수이다. 그는 주로 FC 디나모 티빌리와 소련 국가대표팀에서 뛰었으며, 그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인정받았다.
초기 생애
- 출생: 1957년 1월 24일,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현 조지아) 트빌리시 근교의 쿠비시(현재의 쿠바이) 마을
- 가족: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가정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지역 청소년 팀에서 활약했다.
클럽 경력
| 연도 | 구단 | 출전·골(기록) | 비고 |
|---|---|---|---|
| 1975–1976 | 스키다르 마르다(청소년) | — | 프로 입단 전 소속 |
| 1976–1982 | FC 디나모 티빌리 | 166경기, 19골 | 주요 팀원으로 활약, 3회 리가 챔피언십 우승(1978, 1980, 1981) |
| 1980 | 베르그라데 바르세라(대여) | 12경기, 2골 | 짧은 대여 기간 후 복귀 |
- 주요 업적: 1978년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디나모 티빌리를 승리로 이끌며, 구단 최초로 유럽 대회 트로피를 차지했다. 1981년 소련 리가에서 득점왕(15골) 경쟁에 오른 바 있다.
국제 경기
- 소련 국가대표(1978–1982) – 22경기 3골
-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 및 1981년 유럽 챔피언십(UEFA Euro) 예선에 출전, 중견 미드필더로 전술적 핵심 역할 수행.
사망 및 유산
- 사고: 1982년 12월 13일, 차베르니아 주에서 자동차 사고(차량 전복)로 사망, 향년 25세. 사고는 팀 동료와 함께 있었으며, 당시 팀은 해외 원정 훈련 중이었다.
- 유산: 그의 죽음은 당시 소련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디나모 티빌리와 조지아 축구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구단은 그의 이름을 딴 “다라셀리아 상”(Youth Development Award)을 1983년부터 제정해 유망주 육성에 기여하고 있다.
평가 및 기억
비탈리 다라셀리아는 뛰어난 경기 시야와 정확한 패스로 “경기의 지휘자”라 불렸다. 특히 그의 “다라셀리아 패스”(다라셀리아 패스)라 일컬어지는 빠르고 직선적인 돌파 패스는 전술 교본에서도 사례로 소개된다. 사후에도 그의 경기 영상은 전술 분석가와 청소년 코치들에게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다라셀리아는 그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조지아와 소련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영원히 장식한 인물이다.”
출처: 구 소련 축구 연감, FC 디나모 티빌리 공식 기록, 조지아 축구 협회 자료, 1980~1982년 국제 경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