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야나가라 제국(Vijayanagara Empire)은 1336년부터 1646년까지 남인도를 지배했던 중세 힌두 제국이다. 칸나다어로는 ವಿಜಯನಗರ ಸಾಮ್ರಾಜ್ಯ, 텔루구어로는 విజయనగర సామ్రాజ్యము라고 하며, 카르나타 제국(Karnata Empire)으로도 불린다. 제국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승리의 도시'를 의미하는 수도 비자야나가라(현재의 카르나타카주 함피)에서 유래하였다.
건국과 배경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상가마 왕조 출신의 하리하라 1세(Harihara I)와 그의 동생 부카 라야 1세(Bukka Raya I) 형제에 의해 1336년 4월 18일에 설립되었다. 이들은 원래 호이살라 제국 휘하의 군 지휘관이었거나, 또는 카카티야 왕국 출신의 영주였다는 상반된 학설이 존재한다. 13세기 말부터 델리 술탄국의 알라우딘 킬리지와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가 데칸 지역의 힌두 왕국들(야다바, 카카티야, 판디아)을 잇달아 침공하자, 남인도 세력들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결집하였고, 그 결과 비자야나가라 제국이 건국되었다.
영토와 전성기
제국은 전성기였던 16세기 초 크리슈나 데바 라야(Krishnadevaraya, 재위 1509~1529) 치하에서 남인도의 거의 모든 지배 왕조를 정복하고, 데칸 술탄국들을 퉁가바드라-크리슈나 강 이북으로 밀어냈으며, 가자파티 제국(오디샤)을 크리슈나 강까지 합병하였다. 최대 강역은 오늘날의 카르나타카주, 안드라프라데시주, 타밀나두주, 케랄라주, 고아주, 텔랑가나주와 마하라슈트라주 일대에 걸쳐 있었으며, 면적은 약 88만 km², 인구는 약 1,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행정과 군사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전제군주제 아래 운영되었으며, 효율적인 행정 체계와 활발한 해외 무역을 바탕으로 번영하였다. 군사력으로는 보병, 기병, 전쟁 코끼리를 주요 병력으로 삼았으며, 아마라나야카 제도(봉건적 군역 제도)를 핵심 조직으로 운영하였다. 통화로는 바라하(Varaha)라는 금화를 사용하였다.
문화와 건축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힌두교를 국교로 장려하였으며, 힌두 사원 건축에 있어 남인도와 중부 인도의 전통을 융합한 독자적인 비자야나가라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 수도 비자야나가라(함피)에는 수많은 사원, 기념물, 궁전이 건설되었으며, 이 유적들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국의 후원 아래 칸나다어, 텔루구어, 타밀어, 산스크리트어 문학과 예술이 크게 발전하였으며, 남인도 고전 음악인 카르나타카 음악이 현재의 형태로 확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의 기록
제국의 부와 번영은 포르투갈인 도밍고 파에스(Domingo Paes), 페르낭 누네스(Fernão Nunes), 이탈리아인 니콜로 데 콘티(Niccolò de' Conti) 등 여러 유럽 여행자들의 방문과 저술에 영감을 주었다. 유럽인들은 이 제국을 '나라싱가 왕국(Kingdom of Narasinga)'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포르투갈어로 '나라심하'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쇠퇴와 멸망
1565년 탈리코타 전투(Battle of Talikota)에서 데칸 술탄국 연합군에게 대패한 이후 제국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후 수도를 페누콘다(1565~1592), 찬드라기리(1592~1604), 벨로르(1604~1646)로 옮기며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1646년 스리랑가 3세를 마지막으로 제국은 최종적으로 멸망하였다. 제국이 해체된 후 그 영토는 골콘다 술탄국, 마이소르 왕국, 그리고 여러 나야카 왕국들로 분할되었다.
역사적 의의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남인도 역사에서 힌두교를 통합적 요소로 삼아 지역주의를 초월하는 시대를 창조하였다. 관개를 위한 수자원 관리 시스템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해외 무역을 통해 도입되었으며, 제국이 남긴 건축 유산과 문화적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남인도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