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非子, ?~기원전 858년)는 중국 서주(西周) 시대의 인물로, 진(秦)나라의 시조이자 초대 군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성(姓)은 영(嬴)이며, '비자'는 이름이다. 아버지는 대낙(大駱)이고, 아들로 진후(秦侯)가 있다.
명칭과 구분
'비자'는 한글로 표기할 때 여러 동음이의어가 존재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의미는 출입국 허가 문서를 뜻하는 사증(査證, visa)이며, 그 밖에 여성 노비를 가리키는 비자(婢子)라는 역사 용어도 있다. 사람을 지칭하는 비자(非子)는 이들과 구별되는 고유명사로, 주로 중국 고대사 문맥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본 항목의 '비자(사람)'는 진나라 시조 비자(非子)를 가리킨다.
생애
비자는 서주 시대의 견구(犬丘)에 거주하였으며, 말과 가축을 잘 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소문을 들은 주 효왕(周孝王)이 비자를 불러 견수(汧水)와 위수(渭水) 사이에서 말을 기르게 하였고, 말의 수가 크게 늘어나자 효왕은 이를 기뻐하였다.
효왕은 본래 대낙의 적자(嫡子)인 성(成)을 폐하고 비자를 후계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성의 외조부인 신후(申侯)가 이에 반대하였다. 이에 효왕은 순(舜) 임금 때 짐승을 잘 길러 봉토와 성을 받은 백예(伯益)의 선례를 들어, 비자에게 진읍(秦邑)을 하사하여 부용국(附庸國)으로 삼고, 영씨(嬴氏)의 제사를 잇게 하면서 호를 진영(秦嬴)이라 하였다. 동시에 신후의 딸이 낳은 아들은 원래대로 대낙의 후계로 삼아 서융(西戎)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게 하였다.
비자는 기원전 858년에 사망하였고, 아들인 진후(秦侯)가 그 뒤를 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비자는 서주 시대에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동쪽 지역을 다스리며 진나라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서술된다.
가계와 배경
전승에 따르면 비자의 선조는 전욱(顓頊)의 후손으로, 대비(大費, 백예·백예로도 표기)가 순 임금을 도와 새와 짐승을 잘 기르는 공을 세워 영씨(嬴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후 계보가 이어져 비자의 아버지 대낙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상고시대 계보는 신화적 요소가 섞여 있어 사료 해석에 따라 세부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연대와 사료
비자의 활동 시기에 대해서는 사료와 참고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기원전 900년경, 나무위키 등 일부 자료는 주 효왕 재위 기간(대략 기원전 893~886년)으로 제시하며, 사망 연도는 중국어 위키백과 등에서 기원전 858년으로 기록된다. 주요 출전은 『사기(史記)』 권5 「진본기(秦本紀)」이다.
평가 및 의의
비자는 말 사육이라는 공적으로 주 왕실의 인정을 받아 진(秦) 땅을 봉지로 받음으로써, 훗날 제후국으로 성장하여 진시황에 이르는 진나라 계보의 출발점이 된 인물로 평가된다. 다만 그가 받은 지위는 봉지가 작은 부용국 수준이었고, 진이 정식 제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이후 양공(襄公) 대에 이르러서였다.
같이 보기
- 진(秦)나라
- 사기(史記) 진본기
- 진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