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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트리스 웹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 본명 마르다 비어트리스 웹, Martha Beatrice Webb, 1858년 1월 22일 ~ 1943년 4월 30일)은 영국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사회주의자, 노동 역사가이자 사회 개혁가이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결혼 전 성은 포터(Potter)였다.

비어트리스 웹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의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사회주의 지식인 단체인 페이비언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1890년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를 통해 시드니 웹(Sidney Webb)을 만났고, 1892년에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이후 51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설립을 비롯한 여러 학술·정치적 사업을 함께 진행했다.

비어트리스 웹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노동조합주의와 노동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에 관한 강의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1900년대 초반, 영국의 빈곤 문제와 관련된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에서 활동하면서 빈곤 구제에 관한 소수파 보고서(Minority Report)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교육, 의료, 연금, 일자리 등 국가 및 지역 차원의 복지 제공의 필요성을 상세히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영국의 복지국가 설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윌리엄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도 웹 부부와 평생 동안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대표 저작으로는 남편 시드니 웹과 공동 집필한 《노동조합운동사》(The History of Trade Unionism),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 그리고 자서전인 《나의 도제시절》(My Apprenticeship) 등이 있다. 또한 그녀는 187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70년간 일기를 꾸준히 기록했으며, 이 일기는 당시 영국 사회 상황과 그녀의 개인적·지적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남아 있다.

비어트리스 웹은 1909년 빈곤구제법에 관한 위원회의 소수파 보고서를 작성하여 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안전·위생, 의무교육 등 노동자의 최저 노동 및 생활 조건에 대한 주장을 폈다. 그녀와 시드니 웹은 1913년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녀는 패스필드 남작부인(Baroness Passfield)이라는 작위를 받았으며, 영국 학술원 회원(FBA)이었다. 1943년 4월 30일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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