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루(飛鳳樓)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위치한 누각이다. 2003년 4월 17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명칭 유래
비봉루라는 명칭은 이 누각이 위치한 비봉산(飛鳳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봉'은 '날아가는 봉황'을 뜻한다. 다만 명칭 유래에 대한 별도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건립 경위
비봉루는 고려 말의 대유학자이자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진주 지역을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장구지소(杖求之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후손인 정상진(鄭相珍)이 1939년(일제강점기)에 건립하였다.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1939년 설과 1940년 설이 함께 전해진다.
건축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누각으로, 팔작지붕과 겹처마 오량가로 구성되었다. 익공 양식 중 3익공계 공포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출목이 있다. 누하주는 장초석으로 8각 형태로 위쪽이 비스듬히 가공되었다. 충량은 대들보 위에 얹혀 있으며 머리에는 용두장식이 있다. 사방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내부에는 단청과 그림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누각 내부 천장에는 산수화, 폭포, 설경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정몽주가 순절한 선죽교를 그려 넣은 부분도 있다.
동측에 위치한 관리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한옥과 일본식 건축이 절충된 형태이다. 사방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외부에 유리창을 부착하였다. 대청과 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천 및 현황
건립 이후 추사체의 맥을 이은 진주 지역 서예가 정명수(정상진의 장남)가 서실(書室)로 운영하였다. 이후 정명수의 후손이 서실을 다실(茶室)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소유자이자 관리자는 정인화이다. 지정면적은 1,190㎡, 건물 면적은 약 42.97㎡이다.
의의
진주시의 대표적인 누각 건물 중 하나로, 비봉루에서 바라보는 진주 시가지 전경이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 한옥 양식과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이 절충된 관리사 건물은 한옥 건축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