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닌케비(리투아니아어: Birutė, 13??년 ~ 1382년 또는 1389년 사망 추정)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귀족이자, 케스투티스 대공의 두 번째 부인이며, 비타우타스 대공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리투아니아 역사와 전설에서 중요한 인물로, 지혜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교도 전통과의 연관성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비르닌케비는 리투아니아의 이교도 귀족 가문 출신이거나, 또는 평민이었지만 신성한 지위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팔랑가(Palanga) 지역의 팔랑가 해안가에 있는 비르닌케 언덕(Birutės kalnas)에서 이교도 여사제로 봉사하고 있었다고 한다.
1349년경, 당시 트라카이 공작이었던 케스투티스(Kęstutis)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지혜에 반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데려왔다. 일부 기록에는 그녀가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한 상태였으나, 케스투티스가 그녀를 납치하여 결혼했다고도 전해진다. 당시 리투아니아는 아직 이교를 믿고 있었으며, 비르닌케비와 케스투티스의 결혼은 정치적 동맹과 함께 이교적 전통의 일부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후 비르닌케비는 케스투티스와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그중에는 훗날 리투아니아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비타우타스(Vytautas the Great) 대공이 있다. 그녀는 남편의 통치 기간 동안 왕실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죽음과 전설
비르닌케비의 죽음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1382년, 그녀의 남편 케스투티스가 요가일라(Jogaila, 훗날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오)에게 살해당한 후, 비르닌케비는 크레보 성에 감금되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요가일라에 의해 브레스트에서 익사형에 처해져 사망했다고 전해지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다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녀는 리투아니아 민속에서 중요한 상징적 인물로 남아 있으며, 특히 이교도 신앙의 순수성과 리투아니아 독립 정신을 나타내는 인물로 숭배된다. 그녀가 여사제로 봉사했다고 전해지는 팔랑가의 비르닌케 언덕은 현재 순례지와 관광 명소가 되었으며, 언덕 위에는 그녀를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리투아니아 민속에서는 그녀가 성인으로 추앙받기도 하는데, 이는 기독교화 이후에도 이교적 요소가 흡수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같이 보기
- 케스투티스
- 비타우타스 대공
- 리투아니아 대공국
- 요가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