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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일성 문제

비동일성 문제(非同一性問題, non-identity problem)는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에 대해 지는 도덕적 책임의 근거와 관련된 윤리학적 역설을 가리킨다. '미래 개인의 역설(the paradox of future individuals)'로도 불린다. 영국의 철학자 데릭 파핏(Derek Parfit)이 1984년 저서 『이유와 개인(Reasons and Persons)』에서 처음으로 제기하였으며, 이후 생명윤리학, 환경윤리학, 인구윤리학,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떤 개인을 태어나게 하는 행위로 인해 그 개인이 특정한 결함이나 불리한 조건을 가지게 될 때, 이를 피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러한 조건에서 태어나게 하는 행위는 일견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의 정체성(identity)은 특정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의해 결정되므로, 수정의 시기나 방식이 조금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개인이 태어나게 된다. 그레고리 카프카(Gregory Kavka)는 이러한 현상을 존재의 '불안정성(precariousness)'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따라서 대안을 선택할 경우, 결함이 있는 해당 개인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게 되거나, 결함이 없지만 정체성이 다른 개인이 그를 대신하여 태어나게 된다. 결국 해당 개인이 존재하려면 그 결함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결함 있는 상태로 태어났더라도 그 개인의 상황이 이전보다 나빠진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성립한다.

'개인 영향적 직관(person affecting intuition)'에 따르면, 어떤 개인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위만이 해악이자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직관과 존재의 불안정성을 결합하면, 미래 세대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선택들에 대해 "잘못이 없다"는 역설적인 결론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 현재 세대가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여 먼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이 크게 낮아지더라도, 그 선택이 없었다면 그 특정한 미래 세대 개인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들의 상황이 나빠진 것은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동일성 문제에 대한 주요 해결 시도는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첫째, '총알 물기(biting the bullet)' 전략으로, 개인 영향적 직관을 유지하면서 해당 선택들이 실제로는 도덕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데이비드 헤이드(David Heyd)와 데이비드 부닌(David Boonin)이 대표적이다. 둘째, 개인 영향적 직관을 거부하고 순수 비개인적(impersonal) 관점으로 전환하는 접근법으로, 고전적 공리주의(총합 이론), 평균 이론, 임계수준 공리주의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혐오스러운 결론(repugnant conclusion)'이라는 또 다른 인구윤리적 역설을 초래한다. 셋째, 개인의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더라도 해당 선택이 그 개인에게 해악을 가하거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이는 권리 기반 접근법, 비비교적 해악(non-comparative harm) 개념, 착취 이론 등으로 전개된다. 넷째, 개인 정체성에 관한 형이상학적 가정 자체를 재검토하는 접근법이 있다. 다섯째, 관련 확률 추론의 오류를 지적하는 접근법으로, 로버츠(Roberts) 등이 제안하였다. 여섯째, 행위자의 태도, 의도, 동기 등에 주목하는 계약론적 접근법과 덕 윤리적 접근법이 있다.

비동일성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인구윤리학에서 가장 도전적인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파핏이 '이론 X(Theory X)'라고 명명한 완전한 해결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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