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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캄프만

비고 올페르트 피셰르 캄프만(덴마크어: Viggo Olfert Fischer Kampmann, 1910년 7월 21일~1976년 6월 3일)은 덴마크의 정치인이다. 덴마크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1960년부터 1962년까지 덴마크의 총리를 역임하였다.

캄프만은 덴마크 프레데릭스베르(Frederiksberg)에서 태어났다. 그는 덴마크 사회민주당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첫 번째 학자 출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여 1934년에 정치학 석사(cand.polit.) 학위를 취득하였다. 총리가 되기 전에는 경제 비서실에서 재무장관의 최측근 고문으로 일했으며, 1953년에 처음으로 덴마크 의회(Folketing)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재무부 장관을 두 차례 역임했다. 첫 번째 재임은 1950년 9월 16일부터 1950년 10월 30일까지였으며, 두 번째 재임은 1953년 9월 30일부터 1960년 3월 31일까지였다. 1960년 2월, 당시 총리였던 H. C. 한센(H. C. Hansen)이 사망하면서 캄프만이 총리직을 승계하여 제1차 캄프만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후 1960년 총선을 거쳐 사회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한 소수 정부를 이끌었다.

캄프만의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진보적인 개혁이 추진되었다. 1960년 3월의 재활법은 장애인 및 부분 장애인을 위한 재활, 보조 기구, 직업 훈련, 특수 훈련 센터를 제공하는 통합적 체계를 수립하였다. 1961년 5월의 신공공지원법은 1933년 법을 대체하여, 공공 지원을 받는 것이 정치적 권리 상실이나 결혼 제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1961년에는 건강 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으며, 1962년에는 부가가치세의 전신인 옴스(oms)가 도입되었다.

캄프만은 덴마크 역대 총리 중 가장 지적이고 박식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집무 수행에 있어서는 기복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기 대부분 동안 양극성 장애를 앓았으며, 우울한 시기에는 알코올 의존 증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당시 언론은 이를 공개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캄프만은 여러 차례 심장마비를 겪은 후 1962년 9월 3일에 총리직에서 사임하였다. 그의 후임으로는 옌스 오토 크라그(Jens Otto Krag)가 사회민주당 당수 및 총리직을 승계하였다. 은퇴 후에는 정치 논평가로 활동했으며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6월 3일, 스토레 토뢰에(Store Torøje)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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