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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요한센

비고 요한센(덴마크어: Viggo Johansen, 1851년 1월 3일 ~ 1935년 12월 18일)은 덴마크의 화가이다. 19세기 후반 덴마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특히 덴마크 윌란반도 북부 스카겐(Skagen) 지역에서 활동한 '스카겐 화가단(Skagen Painters)'의 주요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다. 1890년대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생애

비고 요한센은 1851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며, 화가 빌헬름 마르스트란(Vilhelm Marstrand)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였다. 1868년부터 1875년까지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Det Kongelige Danske Kunstakademi)에서 인물화를 전공하였으나 졸업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하였다.

1875년 동기였던 카를 마센(Carl Madsen)과 미카엘 앙케르(Michael Ancher)의 권유로 스카겐 화가단에 처음 합류하게 되었다. 스카겐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작품 경향

요한센은 1885년부터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이 시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를 비롯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특히 1889년작 《아픈 크리스티안 빈슬레프》(Christian Bindslev er syg)에서 밝은 색채 사용으로 나타난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 그의 그림은 전반적으로 더 밝은 톤을 띠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센은 절제된 조명 효과를 활용한 실내 장면으로 특히 기억된다. 대표작으로는 《저녁 대화》(Aftenpassiar, 1886년), 《메리 크리스마스》(Glade Jul, 1891년), 《예술가의 집에서의 저녁 모임》(Aftenselskab i kunstnerens hjem, 1899년) 등이 있다. 또한 스카겐, 티스빌데(Tisvilde), 코펜하겐 외곽 항구인 드라괴르(Dragør)에서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도 제작하였다.

1891년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Peder Severin Krøyer)와의 갈등 이후 요한센과 앙케르 가문과의 관계는 소원해졌으며, 요한센과 그의 가족은 몇 년간 스카겐을 방문하지 않았다.

교육 및 후학 양성

요한센은 1888년부터 1906년까지 예술가 아카데미 여성학교(Kunstakademiets Kunstskole for Kvinder)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20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한동안 학교의 이사로도 활동하였다.

사생활

1880년 스카겐 화가 안나 앙케르(Anna Ancher)의 사촌인 마사 묄레르(Martha Møller)와 결혼하였다. 마사는 요한센의 여러 그림에서 모델로 등장한다. 요한센의 딸 엘렌(Ellen)도 화가가 되었으며, 화가 요하네스 오테센(Johannes Ottesen)과 결혼하였다.

수상

1886년 《저녁 대화》로 토르발센 메달(Thorvaldsen Medaillen)을 수상하였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는 《아이들 씻기기》(Børnene vaskes)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주요 작품

  • 《저녁 대화》(Aftenpassiar, 1886년)
  • 《주방 내부》(Køkkeninteriør, 1884년)
  • 《아픈 크리스티안 빈슬레프》(Christian Bindslev er syg, 1889년)
  • 《메리 크리스마스》(Glade Jul, 1891년)
  • 《화가의 가족》(1895년,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 《예술가들의 모임》(1903년, 스웨덴 국립미술관 소장)
  • 《스카겐 남쪽 해안의 보트》(1910년)

비고 요한센은 1935년 12월 18일 코펜하겐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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