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론디(독일어: Blondi, 1941년~1945년 4월 29일)는 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기르던 암컷 저먼 셰퍼드(독일 셰퍼드)이다.
출생 및 획득 경위
블론디는 1941년에 태어났으며, 히틀러의 개인 비서였던 마르틴 보어만이 강아지 시절에 히틀러에게 선물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자료에서는 1942년 여름 또는 1943년 2월에 획득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1941년이라는 기록이 가장 널리 인용된다.
히틀러와의 관계
히틀러는 블론디를 매우 가까이 두고 각별히 아꼈다. 1945년 1월 16일 베를린의 퓌러붕커(총통 벙커)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블론디를 데리고 들어갔으며, 벙커 내에서 자신의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게 할 정도였다. 히틀러의 비서 트라우들 융에 따르면, 히틀러의 동반자였던 에바 브라운은 블론디에 대한 이러한 애착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브라운은 자신이 기르던 두 마리의 스코티시 테리어(니구스와 스타시)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블론디는 히틀러를 동물 애호가로 묘사하는 나치 선전의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당시 저먼 셰퍼드는 늑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게르만계 원시견'으로 여겨져 나치 시대에 매우 유행하였다.
새끼
1945년 3월 또는 4월 초(4월 4일로 추정), 블론디는 히틀러의 건축가 게르디 트루스트가 기르던 수컷 저먼 셰퍼드 하라스와의 교배를 통해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히틀러는 그중 한 마리를 '불프'(Wulf, 늑대)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는 히틀러 자신이 좋아하던 별명이자 그의 이름 '아돌프'의 의미(고귀한 늑대)와도 일치한다. 히틀러는 이 불프를 직접 훈련시키기도 했다. 새끼 중 한 마리는 에바 브라운의 여동생 그레틀을 위해 예약되었다.
죽음
1945년 4월 29일, 히틀러는 자신의 동맹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파르티잔에 의해 처형되고 시신이 공개적으로 전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련군이 베를린에 근접해 오던 상황에서 히틀러는 자신과 에바 브라운이 생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같은 날 오후, 히틀러는 하인리히 힘러의 친위대(SS)를 통해 전달받은 청산가리 캡슐의 효능에 의문을 품었다. 당시 히틀러는 힘러를 이미 반역자로 간주하고 있었다. 캡슐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히틀러는 SS 의사 베르너 하제를 붕커로 불러 블론디에게 캡슐을 시험하도록 명령했다. 청산가리 캡슐이 블론디의 입 속에서 부서졌고, 블론디는 그 결과로 즉사했다. 히틀러는 블론디의 시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으나 이후 완전히 비통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이 자살한 다음 날인 1945년 4월 30일, 히틀러의 개 조련사였던 프리츠 토르노프는 블론디의 새끼들을 붕커 정원에서 총으로 사살했다. 그는 또한 에바 브라운의 두 마리 개와 다른 참모진의 개들, 자신의 닥스훈트도 함께 죽였다. 토르노프는 이후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
1945년 5월 2일 베를린 전투가 종료된 후, 소련 방첩 기관 스메르시(SMERSH)의 부대가 포탄 구덩이에서 히틀러, 에바 브라운, 그리고 두 마리의 개(블론디와 그 자손 불프로 추정)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블론디로 추정되는 개의 시신은 소련군에 의해 발굴되어 사진으로 촬영되었다.
기타
블론디 이전에도 히틀러는 여러 마리의 저먼 셰퍼드를 기른 바 있다. 1921년에는 '프린츠'라는 이름의 수컷을, 이후 '무클'이라는 이름의 개를 키웠으며, 블론디 이전에는 '블론다'라는 이름의 어미 개와 딸 개 두 마리를 키운 기록이 있다. 1942년 5월에는 블론디의 반려를 위해 '벨라'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어린 저먼 셰퍼드를 구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