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예브그라포비치 타틀린(Владимир Евграфович Татлин, 1885년 12월 28일 ~ 1953년 5월 31일)은 러시아 및 소비에트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무대 디자이너이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함께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으며, 이후 구성주의(constructivism)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생애
타틀린은 1885년 모스크바 또는 하리코프(현재의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예브그라프 니키포로비치 타틀린은 철도 기술자였으며, 어머니 나데즈다 니콜라예브나 타틀리나는 시인이었다. 어머니가 1887년 사망한 후 아버지는 재혼하여 가족이 하리코프로 이주했다. 타틀린은 190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학업을 중단하고 오데사로 가서 상선 견습 선원으로 일했으며, 흑해와 이집트等地를 항해했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펜자 미술학교에서 수학했고, 1911년 모스크바로 정착하여 성화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반두라(우크라이나 전통 현악기) 연주자로서 해외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13년 파리를 방문하여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실을 찾아갔고, 피카소의 입체주의 부조(cubist relief) 작품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 경험은 그가 전통적인 이젤 회화에서 벗어나 산업 재료를 사용한 3차원 작품을 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요 작품과 활동
타틀린은 1914년경부터 '회화 부조'(painterly relief)와 '역부조'(counter-relief)라고 불리는 추상적 3차원 구조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은 나무, 철, 유리, 석고 등 다양한 산업 재료를 사용하여 재료의 물리적 특성과 공간과의 관계를 탐구했다. 특히 '모서리 역부조'(corner counter-relief)는 방의 모서리에 설치되어 전통적인 종교 성화의 위치를 차용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조형 언어를 제시했다.
타틀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Monument to the Third International, 1919~1920)로, 흔히 '타틀린의 탑'(Tatlin's Tower)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높이 약 400m에 달하는 거대한 나선형 철골 구조물로 설계되었으며, 내부에는 각각 다른 속도(1년, 1개월, 1일)로 회전하는 유리로 된 입방체, 피라미드, 원통형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이 기념비는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본부로 기능할 예정이었으나, 재정적·기술적 이유로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계는 구성주의의 상징이자 20세기 전위파 건축의 가장 중요한 미완성 프로젝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920년대 후반부터 타틀린은 인간의 근력으로 비행할 수 있는 개인용 비행 기구인 레타틀린(Letatlin, 1929~1932)을 연구·제작했다. 'летать'(날다)와 자신의 이름을 합성한 이 작품은 새의 비행 구조를 관찰하여 설계되었으나 실용적인 비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후기 활동과 사망
1930년대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미술 노선으로 자리잡으면서 타틀린의 전위적 활동은 위축되었다. 그는 주로 무대 장치가와 책 삽화가로 활동했으며, 정물화와 풍경화 등 회화 작업을 계속했다. 1948년에는 반공산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직장을 잃었으나 탄압을 받지는 않았다. 195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여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되었다.
영향과 평가
타틀린은 재료의 물질적 특성과 기능을 중시하는 '물질문화'(material culture) 개념을 통해 예술과 일상생활의 결합을 추구했다. 그의 작업은 이후 구성주의, 바우하우스, 국제주의 건축, 하이테크 건축 등 20세기 디자인과 건축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