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데이 1세(Bridei I, 생몰년 미상, 재위 약 554년~584년)는 6세기 중반 픽트(Picts) 왕국의 왕이다. 본명은 '마엘콘의 아들 브리데이'(Bridei son of Maelchon)이며, 아일랜드 연대기에서는 '브루이데'(Bruide) 또는 '브루이드'(Bruidhe)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었다. 픽트족은 오늘날 스코틀랜드 북부와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 민족으로, 브리데이 1세는 이들의 왕으로서 약 554년부터 584년까지 통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브리데이 1세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아일랜드 연대기(Annals of Ulster, Annals of Tigernach 등)와 아도므난(Adomnán)이 저술한 『성 콜룸바의 생애』(Life of Saint Columba)에 주로 등장한다. 아일랜드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558년에서 560년 사이에 처음 언급되며, 이 시기 '스코트인(Scots)의 도주' 또는 '마엘콘의 아들 왕 브루이데 앞에서의 이동'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당시 스코틀랜드 서부에 있던 달 리아타(Dál Riata) 왕국과의 충돌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며, 일부 기록에서는 브리데이 1세가 달 리아타의 왕 가브란(Gabrán)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전한다.
브리데이 1세의 궁정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아도므난의 기록에 따르면 콜룸바가 왕궁을 떠난 뒤 네스 강(River Ness)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있어, 오늘날 인버네스(Inverness) 인근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왕국이 픽트랜드의 구성국 중 하나인 포트리우(Fortriu)에 해당하는 모레이(Moray) 일대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만 크레이그 파드리그(Craig Phadrig) 유적의 발굴 결과 당시 성곽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이곳이 왕실 요새였을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도 있다.
브리데이 1세는 성 콜룸바(St. Columba)와의 관계로도 유명하다. 콜룸바가 픽트 왕국을 방문하여 브리데이 1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나, 아도므난의 기록에는 그가 이미 기독교인이었는지, 아니면 콜룸바에 의해 개종되었는지가 명확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 베데(Bede)의 기록은 콜룸바가 브리데이를 개종시켰다고 전하나, 이는 콜룸바 사후 약 1세기 뒤에 기록된 것으로 당대의 견해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포트마호맥(Portmahomack)에서 약 550년경부터 수도원 공동체가 존재했던 흔적이 발견되어, 브리데이 1세가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기독교인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브리데이 1세의 사망 시점은 584년에서 586년 사이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부 연대기에서는 픽트 내부의 경쟁 세력과의 전투 중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의 사후에는 가르트나이트 2세(Gartnait II)가 왕위에 올랐다. 또한 브리데이 1세 생전에 갈람 케날라스(Galam Cennalath)라는 인물도 '픽트의 왕'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픽트에는 여러 명의 왕이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도므난의 기록에는 브리데이 1세의 궁정에 오크니(Orkney)의 '부왕(副王)'이 참석했다는 내용도 있어, 그의 영향력이 오크니 제도까지 미쳤음을 시사한다.
역사학자 존 모리스(John Morris)는 그의 저서 『아서의 시대』(The Age of Arthur)에서 브리데이 1세가 웨일스 북부 귀네드(Gwynedd) 왕 마엘군(Maelgwn)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으나, 이 책은 학계에서 신뢰할 수 없는 자료로 평가되며 해당 주장 역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브리데이 1세에 관한 기록은 전반적으로 모호하고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그의 생애와 통치에 대한 세부 사항은 여전히 학술적 논의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