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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검 영

브리검 영(Brigham Young, 1801년 6월 1일 ~ 1877년 8월 29일)은 미국의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LDS 교회, 통칭 몰몬교)의 제2대 회장(1847년~1877년)을 역임했으며, 유타 준주의 초대 지사(1851년~1858년)를 지냈다.

생애 초기

1801년 6월 1일, 미국 버몬트주 윈드햄 군 휘팅햄의 농가에서 존 영과 애비게일 호우 영의 아홉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14세 때 어머니가 사망한 후 스스로 생계를 꾸렸으며, 이후 목수와 도장공으로 일했다. 1824년 첫 번째 부인 미리암 워크스와 결혼했으나 1832년 그녀가 사망했고, 1834년 메리 앤 앤젤과 재혼했다.

종교 활동

1832년 조셉 스미스가 창시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 입교했으며, 1835년에는 십이사도 정원회의 일원으로 임명되었다. 1844년 조셉 스미스가 피살된 후 발생한 교회 지도권 승계 위기에서 브리검 영은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으며, 1847년 12월 27일 공식적으로 제2대 교회 회장으로 지지받았다.

서부 개척과 유타 정착

동부에서의 종교적·정치적 박해를 피해, 브리검 영은 1847년 7월 24일 약 2,10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평원을 횡단하여 후기성도 교회 개척자들을 유타주 솔트레이크 계곡으로 인도했다. 당시 황무지였던 그 땅을 바라보며 "바로 이곳이다"라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솔트레이크시티를 건설하고,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 아이다호, 캘리포니아, 와이오밍, 콜로라도, 캐나다 앨버타주 남부에 이르기까지 400여 개의 정착지를 세웠다.

정치 및 행정 활동

1850년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에 의해 유타 준주의 초대 지사로 임명되었으며, 유타 지역 인디언 사무국 초대 국장도 겸임했다. 1857년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새 지사를 임명하자 브리검 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부 군단을 재소집하여 유타 전쟁(1857~1858)이 발생했다. 이 전쟁 중 마운틴 메도우스 학살 사건(1857년 9월, 베이커-팬처 이민 행렬 최소 120명 살해)이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브리검 영의 관여 정도는 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1858년 브리검 영은 항복하고 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교육 및 경제 활동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타 대학교(당시 디저렛 대학교)의 전신과 브리검 영 아카데미(현 브리검 영 대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미국 최초의 백화점 중 하나인 ZCMI(Zions Cooperative Mercantile Institution)를 비롯한 다양한 상업 및 산업체 설립을 주도했으며, 미대륙 횡단 철도 건설을 지원했다.

일부다처제와 가족

브리검 영은 일부다처제를 실천했으며, 학자에 따라 55명에서 56명 사이의 아내와 57명의 자녀를 두었다. 다만 모든 결혼이 동거나 성적 관계를 수반한 것은 아니었으며, 일부는 사후 세계를 위한 영원한 결합 의식(인봉)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종 및 노예제 관련 입장

브리검 영은 흑인 아프리카계 남성에게 신권을 부여하지 않는 교회의 금지 정책을 시행했으며, 노예제를 지지하고 유타에서의 노예제를 합법화·규제하는 1852년 법안을 주도했다. 그는 흑인을 '함의 저주'와 연결짓는 인종주의적 관점을 표명했다. 이러한 인종 차별 정책은 1978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되었다.

사망과 유산

1877년 8월 29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충수 파열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솔트레이크시티의 몰몬 개척자 기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설교와 가르침은 19권의 《담론집》(Journal of Discourses)에 수록되어 있다. 브리검 영은 '미국의 모세'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미국 서부 개척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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