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 베네딕(Brooks Benedict, 1896년 2월 6일 ~ 1968년 1월 1일)은 미국의 배우로, 무성 영화와 유성 영화 시대에 걸쳐 활동했다. 본명은 해롤드 J. 맨(Harold J. Mann)이다.
생애
브룩 베네딕은 1896년 2월 6일 미국 뉴욕에서 앨리스 줄리안과 새뮤얼 맨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교에 2년간 재학하며 미식축구팀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미국 구급차 부대(American Ambulance Corps)에 6개월간 소속되었고, 귀국 후에는 1917년 선병법(Selective Service Act)에 따라 미 육군 항공대(U.S. Army Air Service)에 사병으로 입대해 복무했다.
전역 후 헐리우드로 건너가 여러 일을 거친 뒤, 1923년 윌리엄 웰먼 감독의 영화 《큐피드의 소방관》(Cupid's Fireman)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해럴드 로이드 주연의 《신입생》(The Freshman, 1925)에서 캠퍼스 악역 캐릭터로 첫 주요 역할을 맡았다. 그는 1920년대에 로이드와 다른 저명한 무성 영화 스타들과 함께 출연했다.
주요 활동
베네딕은 경력 전반에 걸쳐 3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대부분 무크레딧(크레딧 미표기) 조연·엑스트라 역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1940년대 동안에는 13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이 중 단 세 편에서만 유의미한 배역을 맡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40년 《프레스콧 이브닝 쿠리어》(Prescott Evening Courier)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헐리우드의 약 7천 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들의 생존 어려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말년에는 텔레비전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포 스타 플레이하우스》(Four Star Playhouse, 1956) 등 시리즈에 정기적으로 출연했다. 마지막 출연 작품은 1958년 영화 《하우스보트》(Houseboat)였다.
사망
베네딕은 1968년 1월 1일 오전 12시 5분, 텍사스주 휴스턴의 벨레어 종합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사인 이전에 동맥경화증과 류마티스성 심장질환의 병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사망 이틀 후 휴스턴 국립묘지(Houston National Cemetery)에 안장되었다.
대표 출연 작품
- 《신입생》(The Freshman, 1925)
- 《강자》(The Strong Man, 1926)
- 《스피디》(Speedy, 1928)
- 《걸 크레이지》(Girl Crazy, 1932)
- 《쇼 보트》(Show Boat, 1936)
- 《포효하는 20년대》(The Roaring Twenties, 1939)
- 《키티 포일》(Kitty Foyle, 1940)
- 《상하이 제스처》(The Shanghai Gesture, 1941)
-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 - 테니스 심판 역(무크레딧)
- 《하우스보트》(Houseboat, 1958)
기타
1940년 기준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내 마저리 베네딕과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