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슬라우 조약은 1742년 6월 11일(율리우스력 5월 28일)에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대공국 사이에 체결된 평화 조약이다. 이 조약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일부였던 제1차 슐레지엔 전쟁을 종결시켰다.
배경 174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6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고, 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스트리아의 상속인이 되자 유럽 각국은 프래그마틱 제재(국사조칙)의 유효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이를 기회 삼아 슐레지엔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며 침공했다. 이는 제1차 슐레지엔 전쟁으로 이어졌고, 프로이센군은 초기에 여러 차례 승리하며 슐레지엔 대부분을 장악했다. 오스트리아는 다른 전선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프로이센과의 평화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주요 내용 조약은 슐레지엔의 수도였던 브레슬라우(오늘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체결되었으며, 영국 국왕 조지 2세의 특사 존 뱅크스 경이 중재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영토 할양: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의 대부분과 글라츠 백작령을 프로이센에 할양했다.
- 오스트리아 잔류 영토: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의 일부(예: 테셴 공국, 오파바 공국의 일부 등 오늘날 오스트리아 슐레지엔으로 알려진 지역)를 계속 보유하게 되었다.
- 평화 선언: 양국 간의 전쟁 상태가 종결되고 평화가 선언되었다.
- 속편 조약: 이 조약의 세부사항은 같은 해 7월 28일 체결된 베를린 조약에서 공식적으로 비준되었다.
결과 및 영향 브레슬라우 조약은 프로이센이 유럽의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슐레지엔은 당시 중요한 산업적, 농업적 자원을 가진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프로이센은 이 지역을 획득함으로써 영토와 인구, 경제력을 크게 증대시켰다. 오스트리아는 비록 슐레지엔을 잃었지만,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일시적으로 종결함으로써 다른 전선(특히 바이에른과 프랑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 상실에 대한 복수심을 품게 되었고, 이는 10여 년 후 제2차 슐레지엔 전쟁(1744-1745)과 7년 전쟁(1756-1763)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 조약은 중부 유럽의 세력 균형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