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둡 막 에하크(고대 아일랜드어: Brandub mac Echach, ?~605년)는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활동한 아일랜드의 군주로, 라긴(Leinster) 왕국의 왕이었다. 그는 이 켄셀락(Uí Cheinnselaig) 씨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에후 막 미레다그(Echu mac Muiredaig)였다. 이들은 페델미드(Fedelmid)의 후손인 우이 펠메다(Uí Felmeda) 계열에 속했다.
즉위 배경
『라긴의 서』(Book of Leinster)에 따르면, 브란둡은 이 둔랑거(Uí Dúnlainge) 씨족의 아드 케르 막 콜만 마르(Áed Cerr mac Colmáin Már, 595년 사망)의 뒤를 이어 라긴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실제 전임 왕은 이 말(Uí Máil) 씨족의 아드 딥키너 막 세나그(Áed Dibchine mac Senaig)였던 것으로 보인다.
탄생 설화
『라울린슨 B 502』(Rawlinson B 502) 필사본(약 1130년경)에는 『게인 브란두이브 막 에하크 오쿠스 아에단 막 가브란』(Gein Branduib maic Echach ocus Aedáin maic Gabráin, "브란둡과 아에단의 탄생")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에 따르면, 달 리아타(Dál Riata)의 아에단 막 가브란(Áedán mac Gabráin)이 브란둡의 쌍둥이 형제였다고 전해진다. 두 왕실이 같은 날 각각 쌍둥이 자녀를 얻었고, 아들과 딸을 한 명씩 교환하여 양육했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가 전적으로 창작된 것인지, 아니면 두 인물 사이의 실제 양육 관계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추정만 가능하다.
주요 전투와 업적
연대기에서 브란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590년 마그 옥타르(Mag Ochtair, 현재 킬데어주 클론세리) 전투에서 우이 넬(Uí Néill)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다. 이후 598년에는 둔 볼그(Dún Bolg, 현재 위클로주 던보이크) 전투에서 우이 넬의 최고왕(High King) 아드 막 아인무이레크(Áed mac Ainmuirech)를 격파하고 그를 전사시켰다. 이 승리로 우이 넬의 남진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보루마 라긴』(Borúma Laigin, "라긴의 소 공물")에 따르면, 이 전쟁은 브란둡이 597년 둔 부하트(Dún Buchat)에서 아드의 아들 쿠마스카흐(Cummascach)를 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브란둡은 펀스의 성 아에단(Saint Aedan of Ferns, 632년 사망)의 도움을 받았으며, 아에단은 브란둡의 병사들을 식량 바구니에 숨겨 적진에 침투시키는 전략을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아에단은 전투 후의 공로로 펀스(Ferns) 지역을 하사받았다.
또한 『라긴의 서』의 후대 시들에 따르면, 브란둡은 우이 넬에게 빼앗겼던 아일랜드 중부 지역을 재정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599년 연대기 기록에서도 언급된다.
최후
605년, 브란둡은 케넬 네오간(Cenél nEógain) 출신의 최고왕 아드 우아리드나흐(Áed Uaridnach)가 이끄는 우이 넬 군대에게 슬라에브르(Slaebre)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친족이자 사위인 사란 사에브데르크(Sarán Saebderc)에게 암살당했다.
후손
브란둡의 아들 옹구스(Óengus), 손자 무레다흐(Muiredach), 증손자 에후(Eochu)는 모두 이 켄셀락 씨족의 왕이 되었다. 또한 현대 웨스트미스주에 해당하는 피르 툴라흐(Fir Thulach) 일족과 현대 칼로우주에 해당하는 우이 펠메다(Uí Felmeda) 일족이 브란둡의 후손으로 혈통을 추적했다.
역사적 의의
브란둡 막 에하크는 남부 라긴의 이 켄셀락 씨족 출신으로서 라긴의 최고왕(overking) 지위에 오른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후 이 켄셀락 씨족의 후대 왕들, 예를 들어 디아르마이트 막 말 나 므보(Diarmait mac Mail na mBo)와 그의 손자 디아르마이트 막 무르하다(Diarmait mac Murchada)는 브란둡의 성공을 자신들의 씨족 계보와 연관지어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