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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즈빌 사건

브라운즈빌 사건(Brownsville affair, 또는 Brownsville raid)은 1906년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서 발생한 인종 차별 사건이다.

배경 1906년 7월 28일, 필리핀에서 복무한 미국 육군 제25보병연대(흑인 병사 부대, 버펄로 솔저)가 텍사스주 브라운즈빌 인근 브라운 요새(Fort Brown)에 배치되었다. 당시 브라운즈빌은 짐 크로우 법(인종 분리법)이 적용되는 지역으로, 백인 주민들은 흑인 병사들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었고 여러 차례 마찰이 발생했다.

사건 경과 1906년 8월 13일 밤, 브라운즈빌 시내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백인 바텐더 프랭크 나투스(Frank Natus)가 사망하고 히스패닉계 경찰관 M. 요나시오 도밍게스가 부상을 입었다. 지역 주민들은 즉시 인근 브라운 요새에 주둔하던 제25보병연대 흑인 병사들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브라운 요새의 백인 지휘관들은 총격 당시 모든 병사들이 막사에 있었다고 확인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현장에서 발견된 소총 탄피들이 비정상적으로 좁은 범위(직경 12~15인치 이내)에 모여 있어 증거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병사들의 권총은 병기고에 잠겨 있어 발사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과 미 육군 감찰관 어니스트 갈링턴(Ernest Garlington)의 권고에 따라,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1906년 11월 제25보병연대 소속 흑인 병사 167명 전원을 '침묵의 공모'를 이유로 불명예 전역(dishonorable discharge)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이들은 군인 연금을 박탈당하고 연방 공무원직에 영구히 취업할 수 없게 되었다.

저명한 흑인 교육자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결정 재고를 요청했으나 묵살되었다. 펜로즈 소령(대대장)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의회 논의와 이후 경과 1907년부터 1908년까지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했고, 오하이오주 조지프 B. 포에이커(Joseph B. Foraker) 상원의원이 병사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소수 의견 보고서를 제출했다. 1909년, 병사들의 재입대 자격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으나 실제 재입대한 병사는 14명에 불과했다.

명예 회복 1970년 역사학자 존 D. 위버(John D. Weaver)가 저서 《브라운즈빌 습격》(The Brownsville Raid)을 출판하면서 사건이 재조명되었다. 1972년 미 육군 재조사 결과 병사들의 무죄가 입증되었고,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이들을 사면하고 명예 전역 기록으로 복원했다. 당시 생존자는 단 두 명뿐이었으며, 마지막 생존자인 도르시 윌리스(Dorsey Willis)는 의회를 통해 비과세 연금 25,000달러를 지급받았다.

역사적 의의 브라운즈빌 사건은 20세기 초 미국 남부의 심각한 인종 차별과 군대 내 차별적 처우, 그리고 행정부의 부당한 결정이 소수 집단에 미친 영향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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