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결투쟁(Dirty protest)은 북아일랜드 분쟁 시기인 1970년대 후반, HM 교도소 메이즈에 수감된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PIRA)와 아일랜드 민족해방군(INLA) 요원들이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벌인 시위의 한 단계를 가리키는 역사적 용어이다.
배경
PIRA를 비롯한 아일랜드 분리주의 수감자들은 1972년부터 영국 정부로부터 '특수범주지위'를 인정받아 정치범 또는 전쟁포로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 왔다. 그러나 1976년부터 이 특혜가 취소되면서, 수감자들은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고 벌거벗거나 담요(모포) 한 장만 걸치고 지내는 '모포투쟁'(Blanket protest)을 시작하였다.
전개
1978년 3월, 일부 수감자들이 교도관들의 폭행을 이유로 샤워장이나 화장실 사용을 위해 감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교도소 측은 요강과 세숫대야를 제공했으나, 수감자들은 감방 내 샤워기 설치를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이후 수감자와 교도관 사이의 충돌과 독방 감금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고, 수감자들은 감방에서 나가기를 거부하며 감방 벽에 배설물을 비롯한 배출물을 바르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갔다. 이로써 모포투쟁은 불결투쟁으로 전환되었다.
1978년 7월, 아마 주의 대주교인 토마스 오 피어크가 교도소를 방문한 뒤 감옥 내 실태를 대중에 고발하면서 이 시위가 외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피어크는 감옥 상태가 "참을 수 없었으며, 구토할까 두려워 수감자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을 지경"이었다고 증언하였다.
5개조 요구
1980년 1월, 수감자들은 이른바 '5개조 요구'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죄수복을 입지 않을 권리
- 노역에 동원되지 않을 권리
- 교육적·오락적 목적을 위해 다른 죄수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권리
- 주 1회 면회, 편지, 소포의 권리
- 시위 과정에서 상실된 감형의 완전한 복구
여성 수감자들의 동참
1980년 2월, 아마 여성교도소의 마레드 페렐을 비롯한 30명 이상의 여성 수감자들이 불결투쟁에 동참하였다. 여성 수감자들은 원래 자기 옷을 입을 수 있었기에 모포투쟁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남성 수감자들의 방식에 더하여 생리혈을 감방 벽에 뿌리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갔다.
결과
1980년 6월, 유럽 인권위원회는 이들 수감자들의 행동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동정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며 그 상태가 "비인간적"이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고, 1980년 10월 27일부터는 사태가 아일랜드 단식투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불결투쟁은 이후 단식투쟁으로 전환되기까지 약 5년간 지속된 것으로 기록된다.
의의
불결투쟁은 북아일랜드 분쟁의 교도소 내 저항 운동 중 하나로, 이후 아일랜드 단식투쟁과 그에 따른 사망자 발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