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지황군위문단(北支皇軍慰問團)은 중일 전쟁 기간 중에 활동했던 한시적인 불교 단체이다. 1937년 여름 중일 전쟁이 발발한 뒤, 그해 12월에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북중국(華北) 지역에 출정한 일본군을 위문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종용하여 결성된 단체였으며, 위문단 조직과 파견에도 총독부의 지원이 있었다.
중앙교무원은 위문사 파견에 대해 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9월부터 협의를 시작했고, 11월에 열린 31본사 주지회의를 통해 위문단 조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12월에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김대우가 중앙교무원 서무이사인 김상호를 총독부로 불러 위문사로 파견될 불교계 인사를 선정하라고 지시했다. 김대우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일본 유학파 승려와 음악인들을 추가하여 위문사가 선정되었고, 12월 22일에 위문단이 북중국으로 떠났다. 위문단은 톈진(天津), 펑톈(奉天, 현재의 선양), 베이징(北京) 등지의 일본군을 위문하고 이듬해 1월 28일에 돌아왔다. 와세다 대학 출신의 이동석이 단장을 맡은 위문단은 약 40일 동안의 일정에 앞서 출발 직전 일본군 사령부를 방문하여 출발 인사를 했다. 북중국 위문 일정에도 조선총독부 관리인 일본인이 동행하여 안내역을 맡았다.
위문단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단장은 이동석(선암사 감무·중앙교무원 이사)이었고, 단원으로는 최영환(다솔사 주지·명성학교 교장), 박윤진(중앙불교전문학교 전임강사), 이종태(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문학준(체신국 음악부), 윤전영(가수) 등이 포함되었다.
한편, 이와 별도로 문학계에서도 북지황군위문단이 조직되어 활동한 사례가 있다. 1939년에는 문단 인사들이 동원된 북지황군위문단 파견 행사가 있었으며, 소설가 김동인이 문단 대표가 되어 급행열차로 한 달 동안 북중국 전선의 일본군을 위문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이후 1941년에 '군인원호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북지황군위문단은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의 불교계 및 문화계가 일본의 전쟁 수행에 협력한 친일 성격의 단체로 평가되며, 민족문제연구소의 《일제협력단체사전》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