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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지군

북지군(北地郡)은 중국 고대의 군(郡)으로, 문자 그대로 '북쪽 땅'이라는 뜻이다. 진(秦)나라가 서융(西戎)의 일파인 의거(義渠)를 정복한 후 그 지역에 설치한 군이다.

진(秦)나라 시기

진 소양왕 35년(기원전 272년), 선태후(宣太后)가 의거의 왕을 감천궁(甘泉宮)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진나라는 의거의 땅을 병합하여 북지군을 설치하였다. 치소(治所)는 의거현(義渠縣, 현재의 간쑤성 칭양시 닝 현 북서쪽)이었다. 진나라 시기 북지군은 의거, 음밀, 안무, 팽양, 방거, 이양, 노, 욱질, 장무, 오지, 귀덕, 조나, 제도, 약반 등 14개 현을 관할하였다.

전한(前漢) 시기

진나라가 쇠퇴하고 흉노가 묵돌선우의 통치 아래 발흥하면서 북지군 일대는 흉노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초한전쟁 시기에는 옹(雍)나라의 영토였다가 기원전 206년 한나라가 옹나라를 정복하면서 한나라의 직할 15군 중 하나가 되었다. 원정 3년(기원전 114년)에는 군의 일부가 안정군(安定郡)으로 분리되었다. 삭방자사부(朔方刺史部)에 속했으며, 원시 2년(2년) 기준 64,161호, 210,688명이 거주하였다. 마령현, 직로현, 영무현, 부평현, 영주현, 후연현 등 20현(19현 1도)을 관할하였다.

신(新)나라 시기

왕망이 집권하면서 군의 이름을 위융군(威戎郡)으로 고쳤다.

후한(後漢) ~ 서진(西晉) 시기

양주(涼州)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남흉노의 남하와 강족, 선비족의 침공으로 황폐화되어 6성 3,122호 18,637명만을 거느리는 작은 군으로 축소되었다. 후한 말기에는 강족과 선비족의 침공으로 행정력 유지가 어려워지자 풍익군(馮翊郡) 대우현(祋祤縣, 현재의 산시성 퉁촨시 야오저우구)으로 치소를 옮겼다. 서진대에는 부평현과 이양현 단 2현, 2,600호만을 거느리게 되었다.

북위(北魏) 시기

7현을 속현으로 두었고 옹주(雍州)에 소속되었다. 옛 북지군 지역에는 빈주(豳州)가 설치되었고, 서위(西魏)는 영주(寧州)로 개명하였다.

수(隋) 시기

주현제(州縣制) 실시로 영주(寧州)로 불리다가 수 양제 시기 대업초에 빈주(豳州)로 복구되었다. 6현 70,690호를 거느렸다.

당(唐) 시기

상급주인 빈주(邠州)로 불렸다. 742년(천보원년)에는 팽원군(彭原郡)으로 개명되었다가 758년(건원 원년) 영주로 복구되었다. 과거 7현 15,491호 66,135명을 거느렸으며, 천보연간에는 6현 37,121호 224,837명으로 인구가 증가하였다.

역사적 의의

북지군은 중국 고대 진(秦)나라가 서북방면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설치된 군으로, 이후 한나라 시기에는 흉노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시대에 따라 그 관할 구역과 치소가 여러 차례 변경되었으며, 현재의 간쑤성 동부, 닝샤 후이족 자치구, 산시성 북부 일대에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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