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태조(北宋 太祖)는 중국 북송(北宋)의 초대 황제인 조광윤(趙匡胤, 927~976)의 묘호이다. 휘는 광윤(匡胤), 자는 원랑(元朗)이며, 아명은 조구중(趙九重) 또는 향해아(香孩兒)이다. 재위 기간은 960년부터 976년까지이다.
생애 초기
조광윤은 927년 후당(後唐) 낙양(洛陽) 협마영(夾馬營)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하북성 탁군(涿郡) 보새현(保塞縣)이며, 부친 조홍은(趙弘殷)은 후당의 금군 장관이었고, 모친은 두씨(杜氏)이다. 946년 20세에 군문에 입대하여 후한(後漢)의 장수 곽위(郭威)의 막료가 되었고, 951년 곽위가 후주(後周)를 건국하자 개국공신으로 금군 군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후주 세종 시영(柴榮)의 부하가 되어 근위군 장관을 지내며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검교태부전전도검(檢校太傅殿前都檢), 금군총장령(禁軍總將領) 등을 역임하였다.
진교의 변(陳橋之變)과 즉위
960년, 세종 시영이 사망하고 7세의 공제 시종훈(柴宗訓)이 즉위하자, 조광윤은 북한(北漢)과 거란(契丹)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북상하던 중 진교(陳橋驛)에서 부하 장교들에 의해 황포를 입고 황제로 추대되었다. 이 사건을 진교의 변이라 한다. 조광윤은 개봉(開封)으로 회군하여 공제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즉위하였고, 국호를 대송(大宋)으로 정하고 수도를 개봉(변경, 汴京)으로 하였다. 다만 이 과정은 후대에 조광윤의 제위 찬탈을 인의적으로 각색한 측면이 있으며, 실제로는 무력에 의한 정권 교체였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내정 정책
조광윤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이 군벌의 폐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는 데 주력하였다.
-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961년, 공신 석수신(石守信) 등 금위군 장수들을 초청하여 술자리에서 병권을 자발적으로 내놓게 하였다. 이를 통해 지방 군벌의 할거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
- 문치주의(文治主義) 확립: 유교적 문치주의에 기반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하고, 과거제도를 정비하여 황제가 직접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전시(殿試)를 시행하였다. 무인보다 문인을 중시하는 통치 체제를 마련하였다.
- 절도사 체제 개혁: 지방 절도사의 행정·사법·군사권을 대폭 축소하고 중앙정부에 귀속시켰다. 지방관을 중앙에서 직접 파견하여 군권, 재정권, 사법권을 조정에 집중시켰다.
- 석각유훈(石刻遺訓): 돌에 새겨 자손에게 전한 유훈으로, "조광윤에게 황위를 선양한 시씨(柴氏) 가문의 자손을 대대로 돌보라"와 "뜻이 맞지 않는다고 사대부를 죽이지 말라"는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통일 전쟁
조광윤은 과거제 정비와 내치 안정을 바탕으로 통일 전쟁을 추진하였다.
- 963년: 형남(荊南) 합병
- 965년: 후촉(後蜀) 병합
- 971년: 남한(南漢) 멸망
- 975년: 남당(南唐) 멸망 970년경 중국 북부 지역을 거의 통일하였으나, 거란(요나라) 정벌과 연운 16주 수복은 이루지 못하였다. 사망 당시 북한(北漢)과 오월(吳越)이 남아 있었다.
사망과 독살설
976년 11월, 북벌을 계획하던 중 49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사인에 대해서는 동생 조광의(趙光義, 후일 송 태종)가 독살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나, 과도한 음주 습관으로 인한 질환에 의한 급사라는 설도 함께 존재한다. 조광윤 사후 그의 두 아들 조덕소(趙德昭)와 조덕방(趙德芳)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였고, 동생 조광의가 제위를 계승하였다.
평가
조광윤은 정변으로 집권하였으나 전임 황제인 후주 공제 시종훈을 살해하지 않고 보호하였으며, 항복한 나라들의 군주들을 귀족으로서 대우한 점에서 후대 학자들로부터 덕망 높은 군주로 평가받는다. 유교적 문치주의와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하여 이후 송나라의 정치 체제를 정초하였고, 중국 재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군주로 기록된다. 다만 문치주의와 군권의 중앙 집중화는 송나라 군대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가족 관계
- 부친: 선조(宣祖) 조홍은(趙弘殷)
- 모친: 소헌황후(昭憲皇后) 두씨(杜氏)
- 황후: 효혜황후 하씨, 효명황후 왕씨, 효장황후 송씨
- 아들: 조덕수(요절), 조덕소(연왕), 조덕림(요절), 조덕방(진왕)
- 동생: 송 태종 조광의(趙光義)
시호와 존호
시호는 계운입극영무예문신덕성공지명대효황제(啓運立極英武睿文神德聖功至明大孝皇帝)이며, 묘호는 태조(太祖), 능호는 영창릉(永昌陵)이다.